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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roject/包靑天

방태사에 대한 변론

포청천은 이름에서 보여주듯 그 자체로 공평무사의 화신이고 일을 잘못 처리하는 법이 없다. 정말 없다. 과학수사도 없던 시대에 고문없이 증거를 잘도 찾아낸다. 늘 힘없는 약자를 도와주는데다가 주인공. 그러다보니 이 사람의 앞길을 막기 시작하는 순간 그 누구라도 악당이 된다.

그래서일까? 포증에게는 보호영역이라는 것이 없다. 목숨까지 내놓는 부하들에게 주는 심리적, 물질적 보상 이런 것 없다. 오히려 그런 부하들도 뭔가 잘못했다고 의심할만한 일이 생기면, 수년간 봤던 모습에 대한 신뢰 따위는 철저히 무시되며 진위확인에 앞서 일단 잡아가두고 본다. 조카도 봐주는 것 없다. 죄가 없으면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지만, 작은 잘못이라도 있다면 빠져나갈 궁리는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가까운 사람인 탓에 개인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면 더 불리할지도 모른다.

반면 태사 방길은 포청천이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막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톰과 제리의 축소판이 된 양상. 정확히 하자면 모든 일을 다 막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개입되었을 때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위세는 부려도 게으름을 피우는 법은 없고 신의를 먼저 저버리는 일도 없다. 자신의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심도 없고, 송나라 정권을 뒤엎을 생각도 없어 큰일을 벌이지는 않는 편이다. 다만 일반 백성과 고관대작들이 대립할 경우 항상 고관대작의 편에 서서 포증의 일에 훼방을 놓는다는 것. 스스로가 황실의 외척인데다 삼공 중 하나인 태사의 직책을 맡고 있기에 부족할 것이 없고, 당연히 상당수의 고관대작과 친분이 있으며 그들이 도움을 청해오면 전폭적으로 도와준다. 황제에게 부탁도 하고 포흑자에게 압력도 넣는다. 심지어 법정에서 자결하겠다고 협박해서까지 돕는다. 물론 방태사의 불운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지지해주는 사람 중 믿을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보니 대 포증전 승률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못 믿을 사람의 대표주자는 가족이다.

결국 사적인 정과 공적인 책임감 중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 하는 문제. 톰과 제리에서 어느 날 톰이 착해보였던 것처럼 방태사에게도 좋은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이 두가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방태사도 나름의 인간적이고 약한 면모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 백성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귀족지상주의자 방태사보다는 공평무사한 포대인을 좋아하겠지만, 포대인의 주변 사람으로 버티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바로 옆에서 지내기에는 적당히(?) 사람 몇 죽여도 열심히 감싸주는 방태사가 더 편할지도.

하지만 누구 밑으로 가겠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은 못하겠다. 나도 세계관을 내 위주로 맞춰버리는 편인데, 포증의 세계관쪽이 내 나름대로 짜맞춘 세계관과 더 가깝다. 대신 일 잘하고도 죽을 가능성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 다행히 목숨을 걸고 믿을 가치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대로 걱정없이 편하게 살려면 방길의 신임을 얻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정치적 견해가 맞지 않으면 튕겨져 나오겠지만.

여담으로 태사 방길 역을 맡았던 두만생은 포청천 촬영하면서 집에 한동안 못 들어갔다고 한다. 바빠서가 아니라 사사건건 포대인과 대립하는 극중 이미지때문에 가족들이 문을 안 열어줬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