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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roject/包靑天

강호미청년 릴레이 이벤트 글 - 토끼발


강호미청년이 있을 때 릴레이소설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때 나온 글입니다.

지금 강호미청년이 어디로 갔는지 소식을 알 수 없고 당시 글을 보관해둔 것이 있어 올립니다.

첫번째와 네번째 글만 제가 썼고, 둘째는 soar님이, 셋째는 하얀나비님이 써 주셨습니다.

기록 공유의 차원에서 올리는 것이지만 제가 두 분과 연락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임의로 올린 것이기 때문에 두 분 가운데 한 분이라도 삭제 의사를 밝혀주시면 이 글은 지우겠습니다.



오른쪽 'How to untie the dragon rope'는 이벤트에 참가하고 받은 상품입니다. '만경루회고담'은 같은 시기에 통판된 작품이고 둘 다 비상자님이 쓰셨습니다. 물론 저는 상품에 눈이 멀어 시작한 것 맞습니다.


릴레이의 최초 콘셉트는 어떤 상인이 백옥당의 도움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토끼발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토끼발은 가진 사람에게 행운을 주고 만지면 더 큰 복을 주지만, 만졌을 경우 토끼발에서 손을 떼면 엄청난 화가 닥치는 물건입니다. 당시 운영자였던 비상자님이 이 내용을 글로 풀어 쓰셨고 여기에 그림이든 글이든 내용을 쭉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토끼 발을 절대로 직접 만져서는 안됩니다.
물론 토끼 발을 직접 몸에 지니고 있으면 더욱 큰 행운이 다가옵니다만, 잃어버렸을 경우,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각종 재액과 저주가 돌풍처럼 몰려올 것입니다.'

덧붙여 등장 인물들은 기존 포청천이나 칠협오의에 나온 인물들로 한정하며 '오리지널 캐릭터 창작 금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작성 시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글에 당시 사건 몇 가지가 등장하는데 이 즈음일 것으로 압니다.

읽으면서 무지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은 완결이 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이어 쓰실 분이 있으시다면 환영합니다.

저에게 보내주시면 이어 붙일 수 있고 아니면 링크나 트랙백을 보내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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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글] 백옥당의 시험 
미주랑 ( HOMEPAGE ) 12-01 00:22 | HIT : 120 | VOTE : 0
 

 
백옥당은 그 날 해가 지기 전에 개봉에 들어섰다. 노을이 다 내려앉은 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도 부모들이 들어오라고 부를 그런 때였다. 하지만 평상시보다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 책짐을 지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데도 조용했고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여기 뭐 이래?'


그냥 심드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겠지만 어차피 전조는 뭔가 알고 있겠지 싶었다. 그래서 개봉부로 향했는데 어째 개봉부쪽으로 가면 갈수록 사람이 더 늘어났다.


'날아갈까?'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개봉부에 가면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있겠지만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여기 무슨 일 있소?"
"네? 켈룩켈룩."


백옥당은 책짐을 진 사람 중 한 명을 골라 직접 묻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 서생이오.'라고 행색으로 말하는듯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딘지 퀭해보였다. 기침까지 하는 것을 보아 심한 고뿔에 걸린 모양이었다.


"길에 사람이 많아서. 개봉부에 무슨 일이 있는거요?"
"켈룩. 자정부터 과거가 있소. 개봉부에서 답안용지를 팔고 있어서 기다리는거요. 켈룩."


과거시에서는 많은 인원을 뽑지는 않지만 청운의 꿈을 품고 응시하기 위해 오는 인원은 상당히 많았다. 전조도 거기 불려가서 뭔가 하고 있으려나? 아니지, 전조는 무관이니까 불려가서 뭔가 하지는 않을테지. 아닌가?  백옥당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무리에 휩쓸려다니고 있었다.


백옥당도 과거시험에 대한 이런저런 풍문은 알고 있었다. 합격하지 못해 평생동안 과거만 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개봉에서 책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도 많았다. 과거에 붙기만 하면 그즉시 여자들이 결혼하겠다고 줄을 서고, 심지어는 과거 합격자가 아니면 딸을 결혼시키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린 부모때문에 딸이 늙어서 죽은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어릴때 신기한 남 이야기처럼 들었고 지금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을때나 지금이나 조정에 나갈 뜻이 없었으니까.


그 때 백옥당은 무심코 손을 내려다보았다. 백옥당의 손에는 아까 상인이 쥐어준 토끼발이 든 상자가 있었다.


'행운이란 말이지….'


백옥당은 그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행운이라는 것이 대체 어느정도인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저기, 시험문제는 뭐가 나오는거요?"

아까 그 사람에게 다시 물어봤다. 여전히 켈룩거렸다.

"그야 사서에서 세 문제, 시 짓기 한 문제 아니겠소? 2박3일간. 켈룩."
"2박3일? 무슨 시험을 그렇게 오래 본답니까?"
"켈룩켈룩."


이 사람은 더 이상 대답할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백옥당도 어릴때 반강제로 사서를 읽은 적은 있었다. 스스로도 글은 읽을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강제로 읽으라고 하던 논어니 맹자니 하는 것은 도통 재미가 없었다. 원래는 다들 외워야한다고 했지만 백옥당은 외우는 것은 지겨워서 못하고 다른 학동들에게 묻어가면서 대강 한 번 들어본 것이 다였다. 들은 것조차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그저 심심해서였다.


그래도 어쨌든 한번 들은적이 있으니 초천재 절세 꽃미남 백옥당이 어느정도는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한 줄이라도 쓰고 나오지 않을까.


2박3일이라. 먹을 것이며 붓이며 이것저것 사기는 사야겠구나. 우선 답안지부터 사기로 했다.




두시진 후, 개봉부.
장룡과 조호가 포증이 머무르는 곳에 들어왔다. 며칠째 종일 답안지 파는 일을 감독했기 때문에 둘 모두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사람들도 많은데 수고했네. 이번 답안지는 얼마나 나갔나?"
"148,923부가 나갔습니다."
"그런가. 돌아가서 좀 쉬게."
"저, 그런데…."


조호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장룡도 하고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포증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두 교위를 똑바로 바라본 채였다.


"이번 시험 답안용지를 팔다가 백옥당을 봤습니다. 그래서…."
"금모서 백옥당?"


포증도 그랬지만 공손책도 옆에서 놀라는 눈치였다. 백옥당이 과거라니 이것은 다람쥐가 도토리 대신 코끼리를 먹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이야기였으니까.


"워낙 혼잡하니 누가 사는 것을 도우려 했겠지. 그렇지 않은가?"


이번에는 장룡이 답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답안 용지를 구입한 사람 명단에 백옥당이 있습니다. 답안 용지를 구입할 때 쓰는 이름은 반드시 시험에 응시할 거자의 이름으로 직접 적어야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차후에 시험관들이 거자의 답안을 고쳐 부정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어 필적확인을 하는 용도도 겸하고 있으니."


포증과 장룡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공손책이 말했다.


"저번 부마 진세미의 사건에서도 과거에 응시한 진세미가 한 명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아마 이번에도 금모서 백옥당이 아닌 동명이인일 것입니다."


포증도 공손책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뭔가 스쳐가는 생각이 있어 장룡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름 외에도 적어내는 항목이 있지 않나? 공손선생의 말대로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으니까. 나머지는 뭐라고 적었나?"
"나이는 금모서의 나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주소는 강녕주방. 용모의 특징은 풍류절세꽃미남이라고…."




백옥당은 자정이 넘자 검문을 받고 호사에 들어갔다. 들어오기 전에 답안용지와 초안용지, 붓이나 벼루, 먹, 냄비나 이불, 식료품 등을 샀다. 시험특수라 그런지 엄청나게 비싼 값을 불렀지만 마음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면서 급한대로 사기는 샀다. 그리고 인삼도 좀 샀다. 인삼은 먹으려고 산 것이 아니라 검문을 통과할 때 토끼발이 있으면 아무래도 이상하게 여길 것 같아서 토끼발이 든 상자에 인삼을 채웠다. 인삼으로 토끼발을 가린 덕분인지 검문을 보던 병사들은 백옥당을 그냥 들여보내 주었다.


들어오고 나서야 백옥당은 자신의 몸처럼 아끼던 검이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된 것이 의아했다. 들어오면서 백옥당은 토끼발만 걱정했고 이상하게 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검이야말로 이 자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날 날이 새기 전에 시험이 개시되었다. 시험문제는 과연 사서에서 셋이 나오고, 시를 짓는 문제가 하나 나왔는데 시에는 지정된 운이 있었다. 백옥당은 시험문제를 보고 헛웃음만 나왔다.


'운이 좋기는 무슨. 문제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데. 검을 들고도 검문 통과한 것만 운이었나. 한 줄은 고사하고 한 글자도 못쓰겠구나.'


하지만 일단 시험이 시작되면 시험장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백옥당도 그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시험 도중에 거자가 죽게 되면 시체를 끌어다가 담장 밖으로 내다 버린다고. 죽어야 나갈 수 있었고 반대로 말하면 죽지 않는 이상 나갈 방법이 없었다. 물론 경공을 쓰면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일이 커질 것이었다. 이틀을 못참아 공원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현상수배범이 되는 것은 아무리 백옥당이라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 이틀동안 싸가지고 온 것들을 먹고 마시며 지내다가 나가면 이번에야말로 개봉부에 가서 전조를 만날 생각을 했다. 호사는 영 불편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할일이 없으니 자게 되었다. 아침부터 자고 낮에도 또 잤다. 개봉까지 오는동안 여독이 쌓였는지 잠은 잘만 왔다.


쿨쿨 자는데 어디선지 켈룩거리는 소리가 들려 잠이 깼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더니 이미 해는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슬슬 밥이나 먹을까 하고 가져온 짐꾸러미를 풀었다. 그때 다시 켈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옆 호사에 있는 사람이 내는 소리 같았다.


조금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야 시험에 명운을 걸지 않은 입장이었지만 여기 들어온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번 과거가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회였고 평생을 걸고 치르는 시험이었다. 그래서 옆 호사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고뿔이라도 든 게요?"
"켈룩켈룩."


마침 옆 호사에서 기침을 하던 거자가 나왔다. 연신 기침을 멈추지 않았고 얼굴은 창백했다.


"아, 어제 길에서 봤던 그 사람…!"
"켈룩. 아, 그렇군요. 켈룩."
"저, 몸이 별로 안좋은 모양인데 일단 좀 쉬는게 어떻겠소? 내게 인삼이 조금 있는데 이것이라도 좀 달여드리겠소."
"고맙습니다. 켈룩."


그 말을 듣고는 곧 토끼발이 든 상자에 함께 넣었던 인삼을 꺼내 달이기 시작했다. 토끼발에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민수수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백옥당도 인삼을 달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감기에 효험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따뜻한 것이고 인삼이 몸에 나쁘지는 않겠거니… 해서 호의적인 뜻으로 달이기 시작했다.


"저는 백옥당이라 합니다. 그런데 거자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오?"
"하겸이라고 합니다. 켈룩."


하겸이라고 이름을 밝힌 사람은 정말 몸이 좋지 않았는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죽은듯이 잠을 잤다. 백옥당은 그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서 자신이 덮으려고 가져왔던 이불도 그에게 덮어주었다.


그래도 시 정도는 대강 지어야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시조차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초안용지에 어릴때 부르던 노래만 하염없이 쓰면서 혼자 낄낄거리고 있었다. 운을 맞춰야했는데 운도 맞지 않았다.


生死关  我两肋插刀 情义何价  豪情比天高。
念奴娇啊  只为你一笑 千古风流一肩挑
为知己一切都可抛…


하겸에게 인삼을 달여 먹이고나니 조금은 혈색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하겸도 잤고, 백옥당도 만두를 꺼내 먹고는 다시 잤다. 시험을 치러 온 것이 아니라 자러 온 것처럼 자고 자고 또 잤다.

백옥당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야 일어났다. 이제 내일 해가 뜰 시각이면 답안을 제출해야 했다. 어제 쓰던 그 노래라도 답안용지에 옮겨적을까 말까하는 고민을 했다. 백옥당이 고민을 하는 그 순간에도 하겸은 여전히 기침을 하고 있었다.


"인삼은 감기에 별 효험이 없나봅니다. 아직도 많이 안좋소?"
"아니, 켈룩, 그래도 머리가 아픈 것은 조금 나아졌는데, 켈룩, 기침이 도무지 멎지를 않는군요."
"그래도 답안은 써야하지 않겠소?"
"기침을 하다보니 몸에 기운이 나지 않고 팔에도 힘이 빠져서 도무지 정서할 수가 없소. 켈룩, 그래서 말인데, 내가 초안을 잡은 답안을 정서해서 내지 않겠소?"
"뭐라고요?"
"내 글은 내가 썼지만 제법 잘 썼다고 생각하는데 백옥당 당신의 이름으로 정서해서 내는게 어떨까 싶소. 켈룩, 지금 나는 힘이 빠져서 정서한다고 해도 내 필체로 글을 쓸 수 없소. 나중에 답안을 살 때 쓴 글씨와 같은지 켈룩, 필체확인을 하는데 지금은 도저히 내 필체가 나오지를 않으니 어차피 나는 이번 시험은 틀렸소. 켈룩, 공연히 부정행위로 오인받으면 켈룩, 앞으로 몇회는 시험을 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야하니 난 이번은 포기하는 게 켈룩, 나을 것 같구려. 내 답안으로 좋은 성적을 낸다면 내 이름이 아니어도 기쁠 것이니 내 초안을 가져다 정서해보는 게 어떻겠소? 켈룩, 혹 답안을 다 썼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내 것을 가져다 썼으면 하오."


어차피 백지를 낼까 엉터리 답안을 낼까 고심하던 차였으므로 거절할 이유는 없어 하겸의 초안을 받아다 정서하기 시작했다. 백옥당은 쓰면서 문장을 대강 읽고 기억하기는 했지만 이게 과연 하겸이 자칭 잘썼다고 말할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잘쓴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백옥당은 과거시 수준의 글 가운데 잘쓴 글과 못쓴 글을 판단할 정도로 문리에 밝지 못했다.




"백옥당이 4등으로 급제했다고요?"


마한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위들은 이번 시험의 응시자수를 잘 알고있는 터였다. 더불어 백옥당이 과거시험을 치를 정도의 학문적 소양이 없으며, 조정에 출사할 의도가 없다는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분명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평소 말이 없던 왕조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이번 시험의 시험관이 아니니 채점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백옥당이라는 이름을 쓴 자의 답안이 4등으로 올라가 있네. 답안도 자못 훌륭했고."


왕조, 마한과 공손책은 할말을 잃었다. 분명히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입궐했던 포증이 맞다고 하고 이들은 직접 보고 들은 바가 없으니 뭐라고 반박할래야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럼 폐하께서도 이 일을 아십니까? 본래 1등부터 10등까지의 답안은 폐하께 올라가 폐하께서 친히 어람하시지 않습니까?"
"아직은 못보셨지만 곧 보실걸세."
"저희가 백옥당을 찾아볼까요? 아직 개봉성 내에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녹명연도 있으니 백옥당이 맞다면 그도 참석해야 할테고 임관도 해야하지 않습니까?"
"음. 그게 좋겠군. 백옥당을 찾아보고 찾는대로 본관에게 데려오게. 그런데 전호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오늘 중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백옥당은 답안을 제출한 후 공원을 빠져나가 가장 가까운 객잔에 가서 잠을 청했다. 많이 잤다고는 하지만 불편한 자세로 잤더니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한동안 쉬고는 전조를 만날 요량으로 개봉부로 향했다.


"다른 합격자들은 다 들어본 사람들인데 백옥당이라는 사람은 누구야?"
"글쎄. 나도 처음 듣는데 누구지?"


관청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했다. 그러던 차에 관청앞에 붙은 급제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무려 4위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시험장의 분위기, 그리고 죽기 전에 마지막 각오를 불태우며 시험을 치르는 노인분들을 보면서 이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무려 4등이라니.


하지만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 성사되어버리니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백옥당이 장원급제를 한 것은 아니어서 만약 임관된다면 전조는 물론 사대호법보다도 낮은 품계일 것이었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다. 나에게도 혼인하자는 여인들이 물밀듯이 몰려오게 될까? 그리고 함공도의 형제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면 뭐라고 할까?


그 때 토끼발에 생각이 미쳤다. 이것이 없었어도 하겸이 내게 초안을 넘겨주어 내 이름으로 답안을 내는 행운이 찾아왔을런지.


'토끼발의 위력이라는 것이 이렇게 대단했나.'


백옥당은 문득 이것을 직접 지녔을 때의 더 큰 행운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상자를 열고 토끼발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 때 상인의 말이 떠올랐다.


'토끼 발을 절대로 직접 만져서는 안됩니다.
물론 토끼 발을 직접 몸에 지니고 있으면 더욱 큰 행운이 다가옵니다만, 잃어버렸을 경우,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각종 재액과 저주가 돌풍처럼 몰려올 것입니다.'


백옥당은 자신이 어떤 물건을 지니지 못하고 잃어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돌풍처럼 몰려올 재액과 저주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직접 잡지 않아도 이만한 행운을 주는 것이 저주를 가져다준다면.


하지만 자신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줘서 토끼발을 직접 잡게 만든 다음에 내가 훔쳐내면 그 재액과 저주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구나. 그런데 누구에게?'


개봉성 내에 언뜻 생각나는 사람들이라면, 전조? 포대인? 강녕파파? 방태사? 태자전하? 그리고 또 누가 있었더라…. 마침내 백옥당은 재액과 저주를 받아도 괜찮을 누군가를 생각해내고 그 사람에게 토끼발을 전해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옥당의 뒤에서 왕조와 마한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하겸은 포청천시리즈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어느 편인지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까요? 그냥 과거시험을 칠 생각은 있으면서 결과가 없었던 사람을 한 명 찾고 싶었는데 포청천이나 칠협오의에 나온 사람들 중 수험생활이나 공부에 찌든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다들 금방 붙었거나 아니면 백옥당보다 너무 어렸어요. 골골대는 사람으로 표현해도 무난할 사람은 그나마 하겸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하필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송나라에서는 과거시로 향시, 회시, 전시까지 3차를 보고 향시 결과가 나오는데만 한달반쯤 걸린다는데, 진행상 1회시험에 하루이틀사이에 결론나는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
거자 - 향시 응시자. 여기서는 그냥 과거시험 응시자 혹은 수험생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공원 - 호사가 수만개 모인 시험장.

녹명연 - 향시 합격자들과 향시 시험관들이 시험이 끝난 후 갖는 연회. 아마 최종시험 합격자들이 임관되기 전에 모이는 연회는 이름이 다를 것 같지만 그냥 이 이름으로 갈게요. (무책임)

호사 - 향시를 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칸막이쳐진 가로세로 1m쯤 되는 시험장소인데 물건을 놓아둘 선반과 책상, 걸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감옥같은 곳입니다. 3면이 벽돌로 막히고 지붕만 얹혀있고 문은 없어서 문을 대신할 커튼도 보통 거자들이 지참했다는군요. 여기서 2박3일간을 지내야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옆방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간호하는 것을 부정행위로 보지는 않았지만 옆방 사람이 아프다고 꼭 간호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모의 특징은 원래 외눈, 얼굴에 상처 등 누가 봐도 인정할만한 정확한 특징을 써야합니다. 저런 식으로 주관적인 자기의견을 쓰면 안됩니다.

백옥당이 답안으로 쓰려던 어릴적 노래는 칠협오의 오프닝곡입니다. 송나라에 살던 사람이 천년도 더 지난 미래의 언어로 시를 쓰게 만들었네요. 하지만 재미있어서. [...]

분량기준이었던 한글 기준 2페이지는 넘는 것 같습니다.
수습안되게 이것저것 막 저질러놓은 느낌인데 잘 이어주십사….  
 
 
 



[2/글] 新곤룡삭 등장
 soar ( HOMEPAGE ) 12-04 06:26 | HIT : 120 | VOTE : 0
 

 


얼떨결이었다. 백옥당은 상자를 안고 개봉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왕조와 마한이 먼저 들어갔다. 난데없이 포증이 부른다니 의아했다. 하다못해 전조가 불렀다면 모를까 포증이 부른다는 데는 안 가고 버틸 수도 없었다. 포증 앞에 설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대하기가 좀 껄끄러웠다. 까만 얼굴에 눈만 형형하게 빛나는 걸 바라보고 있자면 전설의 해태가 따로 없었다. 공정함의 상징인 해태는 시시비비를 가려준다는 전설의 동물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건만 왜 해태 같은 포증 앞에서 간이 오그라드는지 몰랐다. 전조가 포증을 일컬어 ‘자애롭고 따듯한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할 때마다 백옥당은 전조의 간을 꺼내보고 싶었다. 사람 내장은 다 사람 주먹만 하다던데 전조는 주먹이 붓통만하든가 아니면 간이 부었다.


        “백대협, 발이 땅에 붙었습니까?”


안쪽에서 힐난이 들려왔다. 마한 목소리였다. 백옥당은 구시렁대며 억지로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풍류검객, 정의와 협의의 수호자 금모서 백옥당은 이상하게도 개봉부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졌다. 정문인 붉은 대문엔 액체 형 쥐덫이라도 발라놓은 모양이었다. 강호에서 만났으면 한 줌에 칵 잡아먹었을 한낱 산적 출신인데 투덜투덜 중얼중얼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며 그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개봉부에서 제일 만만한 사람은 사실 전조였다. 한참을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발에 무언가 툭 걸렸다. 묵직한 것을 주워놓고 보니 보따리였다. 주인이라도 찾아줄 요량으로 보따리를 풀었다. 무슨 단서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보따리를 풀자 금덩어리가 나왔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백옥당은 급한대로 상자에 금덩어리를 넣었다. 곧 정청이었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백옥당이 입을 툭 내밀고 인사했다. 왜 날 불렀냐는 말이 인사였다. 장룡이 발끈해서 덤비려다가 왕조의 제지에 부루퉁하게 물러났다. 포증은 온화하게 웃었다. 물론 눈은 온화하지 않았다.


        “백대협이 죄 지은 건 없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그게 뭡니까?”
        “본관은 강호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함공도의 금모서 백옥당이 일류 검객이라는 건 알고 있네.”
        “대충 그렇죠.”
        “하지만 과거에서 네 번째로 글을 잘 쓸 만큼 학식이 뛰어난지는 몰랐네.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본관도 문관이라 글을 좋아하는데, 눈앞에 명철한 인재를 두고도 지금껏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니 그것이 원망스럽고 한심해서 이렇게 백대협을 청했네. 모두가 감탄했을 답안지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 주게나.”


진심인지 아니면 떠보는 것인지. 백옥당은 침을 삼켰다. 적어도 기술적으로 듣기에 포증의 말엔 한 점의 하자도 없었다. 상자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대답을 못 하겠다고 버틸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왠지 더 의심을 받을 것 같았다.

송나라에서 과거 급제의 의미는 태산처럼 컸다. 하다못해 7품 현령만 되어도 삼대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녹봉을 받았다. 한나라가 유자(儒者)의 나라였고 당나라가 귀족의 나라였다면 송나라는 관료의 나라였다. 그런 와중에 과거의 4등급제라면 중앙에 진출할 수 있었다. 앞으로 백옥당의 후세는 송나라가 멸망하지 않는 한 대대손손 명망을 누릴 발판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였다. 하여 송나라는 과거의 부정에 대해 엄격하게 다스렸다.


        “백형.”


땀이나 뻘뻘 흘리고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구세주가 들어왔다. 이런 것도 운이라면 운이었다. 고양이는 역광으로 빛을 등져서 정말로 하늘에서 선인이 강림한 것처럼 보였다. 전조였다. 순시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반갑게 백옥당을 불렀다.


        “다녀왔습니다, 포대인. 공손선생.”
        “전호위 왔는가.”
        “예. 헌데 백형이 정청에는 무슨 일입니까?”
        “백대협이 이번 과거에 4등급제를 했다네.”


침묵이 흘렀다. 포증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전조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입을 딱 다물어 버렸기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백옥당이 전전긍긍 속으로 불을 태웠다. 고양이는 예로부터 눈치가 빠르다.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 발 저린 쥐가 무언가 꼬투리가 될 만 한 변명을 지레 내어놓으려는 찰나 포증이 상자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왜 그렇게 소중하게 껴안고 있는 거지?”
        “아 이건…….”
        “인삼 냄새가 나는군.”


포증이 상자에 관심을 보이자 전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백옥당에게서 상자를 강탈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강탈도 아니었다. 그가 넋을 빼놓고 있는 사이 훌쩍 가져가 버렸으니까. 포증은 전조가 건네주자 사양도 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이건 금덩어리군.”
        “금이라서 그렇게 소중하게 껴안고 있었던 거요?”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상자 뚜껑을 열자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덩어리만 보였다. 포증이 껄껄 웃었다. 전조는 무언가 계속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포증이 다시 상자를 돌려주려는 걸 중간에서 가로채기까지 했다. 그가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백옥당이 ‘재액’이란 말을 상기하고선 펄쩍 뛰었다.


        “전조!”
        “응?”
        “만지지 마라!”
        “응?”


하지만 고양이가 쥐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사람들은 쥐가 고양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지만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전조는 일부러라도 더 손을 깊이 집어넣고 상자를 뒤적거렸다. 백옥당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도.”
        “왜 안 된다는 거요. 이건 뭐야. 이건 토끼 발이잖소. 이런 걸 왜 가지고 다니는 거요, 흉물스럽게.”


전조가 혀를 찼다. 딱히 시비를 걸만한 건 상자 안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가 금과 토끼 발을 상자에 곱게 넣어 돌려주었다. 백옥당은 내민 상자를 한참 받지 않고 망설였다. 재액이 온다는데, 과거에 4등급제를 한 걸 보면 신빙성이 있는데, 고양이에게 재액과 흉사가 닥치면 좀 곤란한데, 하는 마음이었다. 전조가 짜증을 냈다.


        “팔 떨어지겠소!”
        “어, 이게 뭐야.”


모래알이 천장에서 투두둑 떨어졌다. 워낙 구석에서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백옥당이 상자를 돌려받는 순간 정청의 천장이 와르르 꽝꽝 무너져 내렸다. 균열은 전조의 바로 머리 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조는 급히 돌과 목재 덩어리들을 쳐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청은 고양이를 따라다니면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백옥당은 흙먼지 사이를 뚫고 달려가서 급한 대로 토끼 발을 집어 전조의 등을 푹 쑤셨다. 그러자 갑자기 붕괴가 멈추었다.


        “이런 젠장;;;;”


웃긴 꼴이었다. 길처럼 무너진 천장과 엉거주춤하게 선 전조와 전조의 등에 토끼 발을 댄 채 멀뚱하게 서 있는 백옥당이라니. 전조는 백옥당에게 무언가 항의하기 위해 돌아섰다. 사실 이렇게 격렬한 기세로 무너지던 천장이 갑자기 멈춘다는 것도 이상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기적 같은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서자 토끼 발이 그의 등에서 떨어졌고 다시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사람 잡아먹을 기세로 떨어지는 낙석을 피해 달렸고 백옥당은 그런 전조에게 토끼 발을 접촉시키기 위해 달렸다. 무생물인 천장을 포함해 모두 셋, 그 셋의 바보 같은 경주를 보며 정청 한가운데서 포증과 공손책은 말이 없었다.

        “백형이.”
        “응.”
        “그걸 전모에게 대면 천장이 무너지기를 멈추고.”
        “응.”
        “떼면 무너지기 시작하는군.”
        “응.”


머리 좋은 고양이가 원리원칙을 깨달았다. 그가 백옥당의 손에서 잽싸게 토끼 발을 강탈했다. 백옥당은 별 생각 없이 그것을 내주었다. 어차피 그는 상자 안에 있는 토끼 발만,


        “악!”


이 아니라 방금 토끼 발을 직접 들어 버렸다. 무너지다 말고 골조에 주렁주렁 걸려 있던 서까래의 일부가 갑자기 툭 떨어져 내려 백옥당의 어깨를 때렸다. 그는 얼른 토끼 발의 남은 부분을 잡았다. 고양이와 쥐가 사이좋게 그 짧은 토끼 발을 나눠 잡고 있었다.


        “이건 무슨 새로운 곤룡삭이냐!”
        “내가 할 소리요! 대체 뭘 가져온 거요!”
        “성질을 내 봤자 소용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그 말인즉슨 자초지종을 안다는 말이겠지?”


둘이서 꼭 붙어서 으르렁거리는데 포증이 근엄하게 다가왔다.


        “백대협은 4등급제자이니 녹명연에 참석해야 하지 않나. 보아하니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전호위와 함께 가야겠군. 누가 보면 손이라도 잡고 다니는 줄 알겠네만 어쩔 수 없지.”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황궁 천장을 무너뜨리는 대역죄를 저지르기 싫다면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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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입니다. 진짜예요.
 
 
 
 


[3/글]그날 밤은 길었다
 하얀나비 12-09 14:15 | HIT : 114 | VOTE : 0
 

 
 

  황궁 천장을 무너뜨리는 대.역.죄.

  ‘함께 가라’는 포증의 말을 듣는 순간, 아니, 그 뒷말 - ‘누가 보면 손이라도 잡고 다니는 줄 알겠네만’ - 을 듣는 순간 동시에 표정이 변해서 입을 열려 했던 전조와 백옥당은, 대역죄라는 단어에 일순 말문이 막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녹명연은 내일이니, 백대협도 오늘은 개봉부에서 전호위와 한 방에 머물러야겠군요.”


  공손책이 거들자 두 사람의 얼굴은 조용히 구겨지기 시작했다. 물론 전조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백옥당의 눈에는 보였다. 자신도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억울했다. 어디까지나 이 고양이 녀석이 토끼 발에 손을 댄 게 잘못이다. 내가 분명 경고까지 했는데, 그런데 왜 저 사대호법들까지도 날 노려보고 있는 거냐고!


  “……하아.”


  백옥당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토했다. 원래 이러려던 게 아니었다. 개봉성 내에는 사마외도의 길을 가면서 오서와 대적했던 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자기 형제들이 강호의 방식으로 처리할 일이니,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토끼발을 탐관오리에게 전했다 훔쳐내어 재액과 저주를 받게 해볼까 하던 참이었다. 헌데 방태사를 위시해 몇몇의 후보 명단을 만들어 놓고 길을 가려다가 그만 개봉부로 불려가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과거 따위 응시하지 말 것을 그랬나. 아니, 토끼발을 받지 말 걸 그랬었나?’

  이제까지 천하제일(누가?) 풍류검답게 그냥 자기 실력에 의지해서 당당한 남아로 이 한세상 잘 살아왔는데, 왜 새삼 쓸데없이 행운 같은 것에 호기심을 느껴 이런 사태를 초래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어찌해야 할지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금모서 백옥당, 이 정도로 좌절할 만큼 나약한 사내가 아니다! …그런데 대책을 어떻게 마련하지?


  “포대인, 혹시 그 녹명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급제자로서 당당히 황궁의 연회에 참석하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할 수는 없다. 이 천하제일(그러니까 누가?) 풍류절세꽃미남 금모서 백옥당의 체면이 있지 않은가!


  “당금 황상께서는 녹명연이 열릴 때 친히 납시시어 합격자들과 시험관들을 치하하고 어주(御酒)를 내리시지. 헌데 급제자가 빠진다면 이는 큰 불경이 될 것이네. 게다가 폐하께서도 오늘 내로 자네의 이름과 답안을 보실 터이니, 만약 백대협이 가지 않는다면 폐하와 여러 관리들이 더욱 궁금해하시지 않겠는가?”


  백옥당이 평소에 눈치가 아주 빠른 건 아니었지만, 포증의 얼굴과 말투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자신의 4등짜리 답안이 황상의 손에까지 들어간 이상, 어떻게든 해명(?)을 하지 않고서는 벗어날 방법이 없으리라는 것을. 녹명연은 시작에 불과할 텐데 벌써 피했다가는 훨씬 더 귀찮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 일은 내일 고민하자!’


  백옥당은 옆에서 자신을 은근히 노려보고 있는 전조의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이 녀석과 함께 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이지만, 어쨌든 제 놈도 잠은 자야 할 테고, 내일 아침이면 정신이 좀 더 명징해져서 뭔가 대책이 나올 게다. 암, 그래야지. 이제 가서 쉬겠다고 말을 하자…….


  “그나저나 저 무너진 천장은 어찌 해야겠습니까?”


  장룡이 백옥당을 향해 원망의 시선을 보내며 말한다. 아니, 저 정도 눈빛이면 완전 ‘네가 책임지고 고쳐’라는 의미인데?


  “백대협이 이상한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닙니까?”


  조호가 옆에서 확인사살을 해준다. 아니, 그러니까 고양이가 괜히 토끼 발을 건드려서…….


  “안 그래도 개봉부에 바쁜 일이 한둘이 아닌데…….”


  마한마저 혼잣말 치고는 너무나 분명한 어조로 힘을 주어 말한다. 그러니까 그건 고양이가…….


  “백대협은 손님으로 온 것이니 번거롭게 해서야 되겠나?”


  다행히도 포증이 그들을 말렸다.


  그래, 해태 같은 무서운 포대인이라도 역시 개봉부에서는 포대인이 제일 좋은 분…….


  “우선은 백대협의 답안지에 대해 먼저 들어 보세. 평생 문장을 가까이하며 살아온 본관이 보기에도 그대의 답안은 감탄할 만했네. 백대협이 그리 시문(詩文)을 잘 짓고 사서삼경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줄을 여태까지 몰랐으니, 본관의 식견이 부족했음이야.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았으니 백대협이 그동안 혼자 가슴에 간직해 온 학문과 포부에 대해 천천히 함께 담소를 나눔이 어떠한가? 전호위도 학식이 얕지 않은 사람이니 기꺼이 대화에 참여하고자 할 걸세.”

  “…포대인.”

  “말씀하시게, 백대협.”
  “천장 수리는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당장이 좋겠지요?”




  “…….”


  불침번 근무자를 빼고 모두 잘 준비를 하고 있을 개봉부 내의 어느 단아하고 정갈한 방 안.

  의자에 앉은 백옥당은 아까부터 집요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전조의 시선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볼 거냐!”


  순간 전조의 눈빛이 제법 매섭게 번뜩이자 백옥당은 움찔했다. 사실 전조는 당장이라도 버럭 화를 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밤에 개봉부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게 하면 안 될 것이고, 싸우면서 둘 중 하나라도 흥분해서 잘못 움직이다 토끼발을 놓치기라도 하면 자신이 아끼는 유일한 휴식처인 이 방마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언제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을 참이오? 전모가 직접 조사하길 기다리고 있는 거요?”


  비난의 기색이 역력한 전조의 말투에 백옥당은 성질이 났다.


  “그러니까 네 녀석이 그걸 잡지 않았으면 나도 안 잡았을 거고, 그럼 너와 내가 이렇게 새로운 곤룡삭에 묶이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전조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해, 이 물건을 손에 한번 잡은 사람은 이것과 떨어지게 되면 몹쓸 일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로군.”


  백옥당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남들 머리 한 번 돌아갈 때 일곱 번은 족히 돌릴 만큼 머리 좋은 전조이다. 아까 정청에서의 상황만 되짚어 봐도 전조 머리로는 충분히 간파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래, 너 잘났다. 말해 주면 될 거 아냐!”


  아무래도 전조를 완전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할 듯했다. 결국 그는 상인에게서 토끼 발을 받은 이야기와, 그 상인이 해 준 말의 내용을 전조에게 들려 주었다. 단 하겸이란 서생이 답을 대신 만들어줬다는 것과, 방태사에게 토끼 발을 전해 주려 했던 것은 쏙 빼고.


  “……하.”


  전조가 짧게 쓴웃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니까, 백형이 과거에 4등으로 급제한 것도 이 토끼 발이 가져다 준 행운이로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응시자의 기본 실력이란 게 있는데 어떻게 4등씩이나 차지한단 말이냐- 라는 의구심이 전조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백옥당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왜, 내 주제에 4등이나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뜻인가? 네가 날 그리 잘 알아? 나와 학문에 대해 논해 본 적이 있어? 그러는 넌 그렇게 문재(文才)가 출중하기라도 하다는 거냐?”


  “…됐소.”


  천장을 수리하겠다고 우겨대는 백옥당을 포증이 친절하게 만류하며 그냥 오늘은 쉬라고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중노동을 면했으나, 전조의 낯빛에는 육체적 피로보다 더 무섭다는 정신적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백옥당도 속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전조와 함께 물러나오는 자신의 뒤에 대고 포증이 한 마디를 덧붙였던 것이다.


  - 어차피 백대협의 학문은 내일부터 확인할 기회가 있을 것이니 급할 건 없지.


  답안을 열심히 베껴 썼지만 문장만 그럭저럭 기억할 뿐, 내용은 깊이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전조 네 놈이 이런 내 심정을 알기나 하냐고!


  “내가 분명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백옥당은 공연히 전조에게 화를 냈다. 전조가 뭐라 항의하려다 꾹 참는 듯 입을 다물었다. 전조는 감정싸움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상인이 재액을 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소?”

  “그런 게 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후, 그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직접 잡으면 그냥 지니고 있는 것보다 더욱 큰 행운이 다가온다 했으니, 우리 두 사람이 이 토끼 발을 놓치지만 않으면 평생 복을 누리면서 살겠군.”


  자조적인 전조의 말투에 백옥당도 한숨이 나왔다. 한 사람만 토끼 발을 잡았다면 어떻게든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하면 될 것이지만, 두 사람이 잡았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아름다운 여인도 아니고 이 고양이 녀석과 평생 붙어다니라고?


  ‘그냥 토끼발을 잡아채서 확 도망가 버려?’


  잠시 그런 어이없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리상의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전조가 순순히 재액을 혼자 다 받으며 살아가 줄 정도의 바보는 아닐 것이다.


  “보답을 받으려고 구해 준 것도 아닌데 그 상인 녀석은 왜 이걸 내게 줘서…….”


  백옥당이 중얼거리는 순간, 전조가 흠칫했다.


  “그 상인, 혹시 백형이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던 자는 아니었소?”

  “아니, 난 딱히 상인들과 교분을 쌓지는 않으니 당연히 모르는 자였지.”

  “그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단 말이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전조가 망설이다가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전모가 공연한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토끼 발이 행운을 가져다 주는 물건이라고 그 상인은 확신하고 있었던 듯한데,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왜 백형에게 주었을까? 상단이라면 구명지은(求命之恩)의 답례로 줄 다른 물건도 있었을 것 아니오.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행운이 계속 따라다닐 텐데 그리 쉽게 남에게 주었단 말이오?”

  “잘못했다가 너와 나처럼 이런 재액을 당할까 봐 꺼림칙했을지도 모르지. 설마 그자에게 다른 속셈이 있었단 건가?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잖아? 나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자야.”

  “하지만 그자는 상인이오. 그 상인과 거래하는 강호인이나 관리들 중 백형을 아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너 설마… 이게 누군가의 계획에 의한 일이란 거야? 누가? 대체 무슨 의도로? 토끼 발이 나에게 어떤 행운이나 저주를 가져다줄지는 나조차도 모르는 건데? 내가 과거를 보고, 너와 함께 이런 식으로 토끼 발에 묶이게 될지 그 누구도 알았을 리가 없잖아.”

  “모르겠소. 어쩌면 상인과는 무관할 수도 있고, 난 단지 이런 기이한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 그냥 우연이 아니라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잠시 궁금했던 것뿐이오. 일단은 이 저주를 풀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소. 혹 옛 문헌에 이 토끼 발에 대해 무언가 기록이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역시나 불침번 근무자를 빼고 모두 깊이 잠들었을 개봉부 안, 창밖으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이 커다란 방은 물론 서재일 것이다. 이야기 소리도 간간이 새어나오지만 듣는 사람은 없다.


  방안에는 곰팡내 대신 묵향이 은은히 배어난다. 공손책이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았다면 이리 깨끗하진 않으리라. 이렇게 많은 책을 수집한 것도 대단한데 이토록 정갈하게 유지 보존까지 하는 공손책이 진정 능력자임을 개봉부에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뭐야, 이 책에도 없어? 대체 이 많은 책들을 다 뒤져도 없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공손책이 애지중지하는 이 서재에서 감히(?) 책들을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뜨려 늘어놓을 수 있는 간 큰 남자는 개봉부 내에는 없다. 백옥당이니까 가능한 거다. 기이한 동식물과 광물이 기록된 책, 전설과 민담이 기록된 책, 이국(異國)의 문화가 기록된 책 등 여러 권의 책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난 아직 일곱 권도 채 보지 못했소. 왜 이리 정신사납게 구는 게요?”


  전조가 또 한 권의 책을 덮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흘겨본다. 고양이 녀석, 평소에도 새침하게 구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너무 까칠한 거 아냐? 사내놈이!


  “넌 책 보는 게 취미냐? 난 눈 아파서 못 견디겠다고! 공손 선생이 정녕 명성이 자자한 문사가 맞긴 맞는 거냐?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책들만 쌓아 놓고 있잖아!”


  전조는 속독을 하면서도 핵심 문장을 잘 파악하는 재주를 지녔지만, 백옥당은 이 책 저 책 아무렇게나 뒤져 보다가 금방 내던지기를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자료 하나 찾는  게 무슨 과거 시험만큼이나 어렵다.


  “그렇게 건성으로 할 것 같으면 차라리 가만히 앉아 있으시오. 나까지 집중이 안 되잖소! 가뜩이나 왼손으로 책 넘기는 것도 번거로운데.”


  불쌍한 우리의 전조는 곤룡삭 때도 오른손이 묶이더니, 이번에도 오른손으로 토끼 발을 잡는 바람에 왼손을 사용해 책을 넘기고 있었다.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빼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한 권씩 한 권씩 읽는 작업도, 한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두 사람에게는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누가 건성으로 한다는 거냐! 찾아도 안 나오는 걸 어쩌라고? 우리 중원의 여우, 도사, 신선 이야기들 중에도 없고, 동방, 서방의 이민족들도 도깨비 방망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더구만, 왜 이놈의 토끼 발만 없는 거냔 말이다! 토끼 간(肝) 이야기는 있는데 왜 토끼 발 이야기는 없냐고!”

  “한밤에 어찌 이리 시끄럽소? 딴소리 할 시간에 한 권이라도 더 보시오.”


  끝까지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전조다. 백옥당은 그를 노려보았지만, 아침이 되기 전에 정말로 한 권이라도 더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인지라 일단은 책을 들었다.


  “근데 이건 뭐냐? 월간 개봉?”

  “아니, 공손 선생이 월간 개봉 최신호가 안 보인다고 한참을 찾으시던데 이 책들 속에 섞여 있었군. 누가 읽고 엉뚱한 서가에 갖다 놓았던 건지… 백형,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요? 그 옆에 있는 박물지(博物志)나 읽어 보시오!”

  “사마귀 경극단의 단원들이 관리를 풍자하는 희극을 공연하자 전에 성희롱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고관대작 강모 공(公)이 관리 집단모욕죄로 그들을 고소해서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허 참, 역시 관리들이란……. 전연의 맹(澶淵之盟) 이후로 요나라와 강화 조약을 할 때는 늘 독소 조항이 너무 많아 백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백형!”

  “방태사의 자산관리 특급비법, 개봉성의 맛집과 당일치기 여행 명소, 황궁 전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훈남 태자전하의 하루를 밀착취재… 참 별 게 다 있군. 공손 선생의 ‘생로병사의 비밀’과 포대인의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도 연재되고 있고… 이건 또 뭐냐? 개봉성 최고의 미청년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고양이 네 녀석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백형, 전모가 분명히 박물지를…….”

  “미모를 가꿀 수 있는 비결을 물었으나 전호위는 끝내 응답하지 않아 결국 그의 미모는 타고난 것으로 결론내릴 수밖에 없어 개봉의 뭇 사내들을 열폭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측근인 사대교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 스물을 훌쩍 넘겼는데도 혼인하지 않는 이유 또한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너무나 배려심이 깊은 전호위는 지아비의 미모가 더 출중할 경우 아내 될 이가 받을 상처를 염려해 차마 그 누구와도 혼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자칭 무공의 고수라 자처하던 자들이 전호위를 만나면 쪽도 못 썼듯, 풍류절세꽃미남이라 자처하는 어느 섬의 모모씨도 전호위 앞에서는 한낱 고양이 앞의 쥐가 되리라… 뭐가 어째? 이 기사 누가 쓴 거야!”

  “백옥당!”

  전조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다. 백옥당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책을 집어들고 벌떡 일어나 부욱 찢어 버린, 즉 토끼발에서 손을 떼고 만 것이다. 백옥당 본인도 깜짝 놀라면서 바로 다시 토끼발을 잡았으나, 두 사람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해 동시에 천장을 쳐다보았다.

  “…….”
 
  “…….”

  다행히 천장은 멀쩡했다. 서가(書架)가 무너지지도 않았다. 하다못해 탁자의 책들도 떨어지지 않았다.

  백옥당을 바라보는 전조의 눈빛이 무형의 심검(心劍)을 담은 듯하다. 평소엔 전조를 놀리고 갈구는 것을 삶의 낙으로 아는 백옥당이었으나 그 눈빛엔 모골이 송연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잖아.”

  “그래서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거요?”

  “우리 둘 다 무사하고 서재도 무사하면 된 거지. 내가 잠깐 놓자마자 순발력을 발휘해서 바로 다시 잡았잖냐. 그래서 아무 재앙도 생기지 않았고.”

  “만약 무슨 재앙이라도 일어났다면 전모가 더는 예를 차리지 않았을 거요.”

  목소리에 날이 선 것이 농담이 아닌 것 같다. 백옥당은 다시 오기가 생겼다.

  “너 아까부터 계속 잘난 체하는데, 이 백나으리께서 고양이를 두려워할 것 같으냐? 어디 한번 해 볼까?”

  “백대협.”

  “뭐야, 갑자기 웬 백대협? 너 벌써 나한테 겁먹은… 응?”

  전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백옥당이 갸웃거리며 고개를 돌리니… 문 앞에 공손책이 서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지?

  “내가 아끼는 책들을 탁자 위에 이렇게 아무렇게나 흩어 놓은 사람이 백대협이오?”

  “아, 공손 선생, 그러니까 그게…….”

  “게다가 이 반으로 찢겨 있는 책은… 내가 열심히 찾고 있던 월간 개봉?”


  공손책의 눈에서, 아니,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스멀스멀 돋아난다.


  “잠이 오지 않아 바깥을 거닐다 서재 쪽에 불빛이 보여서 와 봤는데, 금모서가 어느새 서재에 들어와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구려. 다른 책도 아니고 내가 생로병사의 비밀을 연재하는 이 소중한 월간 개봉, 그것도 최신판을. 아직 밀린 원고료도 다 못 받은 나의 월간 개봉을…….”

  “공손 선생, 나 혼자 이 책들을 본 게 아니라 전조도….”

  “이번 달엔 방태사의 자산관리 특급 비법이 실린다고 해서 인기순위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심혈을 기울여 쓴 나의 소.중.한. 원고가 들어 있는 이 월간 개봉을… 이토록 무참하게,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이 서재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공손 선생의 안광과 함께 고오오오오오오…하는 소리가 백옥당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공손책의 눈에 전조는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백옥당이 필사적으로 전조를 보았지만 전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백옥당은 그제서야 알았다. 아무 재앙도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것을.

  상인이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토끼 발을 잃을 경우 각종 재액과 저주가 돌풍처럼 몰려올 것이라고…….


  아침 해가 밝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정말 청명하다.

  전조와 백옥당은 손을… 아니, 토끼 발을 맞잡은 채 나란히 개봉성의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 다 이런 모습으로 다니는 게 좋을 리는 없다. 다만 전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관리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공문서 작성이나 사건 수사 같은 일들은 개봉부 사람이 아닌 백옥당을 곁에 두고 하기에는 곤란하여, 재판과도 관계없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골라 처리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가볍게 순시를 돌고 있는 것이다. 관복은 너무 눈에 띄기에 전조는 그냥 사복 차림이었다.


  “대체 이놈의 순시는 하루라도 거르면 안 되는 거냐? 웬만하면 빨리 들어가지?”


  서로 형제처럼 아끼는 자들은 사내끼리도 손을 잡을 수 있고 한 침상에서 자기도 한다. 허나 계속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은 흔치 않은 행동. 전조와 백옥당은 자세와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기도 하고 사람들 틈으로 섞이기도 하고, 아는 사람과 마주치면 그럴 듯한 말로 둘러대기도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옥당은 인내심이 많지 않았다.


  “어차피 사복을 입고 하는 순시는 업무일지에 자세히 기록하지도 않잖아. 이 정도 하고 곧장 개봉부로 가자고!”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소. 헌데 백형은 개봉부에 들어가 다시 공손 선생의 얼굴을 대할 자신이 있소?”


  백옥당은 찔끔했다. 조용한 사람의 분노는 범람하는 황하보다 더 무섭다는 교훈을 그는 어젯밤 톡톡히 받았던 것이다. 과연 밤새 서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상상에 맡길 뿐이나, 오늘 백옥당이 이렇게 전조를 따라 순순히 거리에 나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제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게 공연히 문헌 자료를 찾자는 말은 왜 했어?”

  “지금 날 탓하는 거요?”

  “결국 찾지도 못했잖아!”

  “백형이 쓸데없는 짓만 안 했어도 찾았을지 모르지.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포대인과 공손 선생께 이 토끼 발에 대해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오.”

  “꼭 그래야 하나?”


  백옥당은 포증과 공손책이 혹시 자신이 과거 시험에서 부정행위로 급제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을지 두려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포대인이 괜히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포청천이겠나.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럼 무슨 다른 방법이라도 있소? 곧 녹명연에 참석하러 가야 할 텐데?”
  “당장은 없지만….”


  대꾸하던 백옥당의 말이 갑자기 뚝 끊겼다. 할 말이 없어서 말을 얼버무렸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깨끗하게 멈췄다.

  이상하게 여긴 전조가 그의 시선을 눈으로 따라갔다. 그리고 저 앞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백옥당과 전조는 동시에 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머니!”
  “강녕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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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기는 하였으나 걱정이 태산이네요. 괜히 일을 저지른 건지ㅠㅠ
사흘간 낑낑거리며 고치고 또 고쳤지만 이 정도밖에 안되더라고요ㅠ 72시간 내에 못 올릴까봐 그냥 이렇게라도 올립니다. 아예 안 올릴까 생각도 했지만 써논 게 아까워서 철판깔고 올립니다.

1. 토끼발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으며, 상인이 토끼 발을 백군에게 준 데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잠시 의심한 전조.
'오리지널 캐릭터 창조 금지'라는 규칙이 있지만, 그 상인을 오리지널 주연급 캐릭터로 만들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핵심 소재(토끼발) 자체에 이런 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무리한 설정이 아닐까 걱정도 되는데, 그건 뒤에 쓰실 분들의 상상력과 창조력에 따라 더 재밌게 풀어나가실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해 봅니다. ㅠ
정 아니다 싶으면 그냥 아예 무시해버리시는 게 나을지도....;;;;;


2. 녹명연에 황제도 원래 참석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알아봐도 자료가 나오지 않더군요. 황제가 급제자들을 위해 열어주는 연회는 따로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옥당과 전조가 손을 잡고 녹명연에 나타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황제폐하도 계시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일단 '당금 황제께서는 녹명연에도 친히 참석하신다'고 설정했습니다.


3.  스토리를 이어간다기보다 그냥 개그 에피소드를 써놓은 것 같아서 죄송해요ㅠ
특히 '월간 개봉' 부분은 너무 현대적인 표현도 많고 심하게 코믹해서... 찔리기는 합니다만....
그냥 애교로 봐주시면 안될까요? (흑흑)


4. 강녕파파 등장이 뜬금없긴 하지만....
신(新) 곤룡삭도 곤룡삭이니 ㅋㅋ강녕파파가 등장하시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아...아니라고요?ㅠ_ㅠ
    
    

  
정말 괜히 3편 쓰겠다고 오기를 부린 것은 아닌지 땅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글을 일년간 안 쓴 사이 이렇게 머리도 글솜씨도 굳어버렸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나름 최선을 다한 게 겨우 이거랍니다.
그저 관대하게 보아주십사...(꾸벅)



 
 
 
 


[4/글]



"너 개봉에 있긴 있었니?"


뭐랄까. 오랜만에 만난 강녕파파의 눈에는 반가움이 담겨 있었지만 말 속에서는 만나게 되어 의외라는 뜻이 비쳤다.


"네?"


백옥당은 어리둥절했지만 전조는 강녕파파의 한마디가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챘다.


"파파, 큰 소란을 겪으신 것 같군요."
"정말 소란스러웠지."
"네? 전조, 이게 무슨 이야기야?"


전조의 설명은 이랬다.
원래 과거급제는 가문의 영광을 넘어서 그 고장의 영광이기도 하다. 때문에 현령은 자신이 관할하는 현에서 과거급제자가 나오면 직접 수하의 관원들을 데리고 급제자의 집에 찾아가 급제소식을 알리고 떠들썩하게 축하를 해준다. 만약 과거에 응시한 거자의 집안이라면 현령의 축하방문을 학수고대했겠지만 강녕파파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때려서 쫓아냈단다."


전조와 백옥당은 한순간에 함께 멍한 표정을 했다.


"오죽 시끄럽게 굴어야지. 그렇게 많은 폭죽은 처음 봤다. 현령이 사람들을 잔뜩 데려와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가고나니 사람들은 우리집이 과거급제한 수재의 집이라며 몰려드는데 얼마나 웃겼는지….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더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과거시험에 급제할리가 없잖니."


어… 어머니.


"그런데 대체 무슨 소리냐? 왜 네가 과거에 급제했다고 현령까지 찾아오는게야? 그것도 4등이나 했다고 하니 내 얼마나 웃었는지 아니? 내 방태사가 지방시찰을 갔다가 신문고를 두드려 정청까지 들어가서는 고소 내용은 말하지 않고 '나 태사 방길입니다.'만 아홉번을 외치고 나왔다는 이야기 이후로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처음이었어."

백옥당은 방태사에 비교되는 것이 불쾌했지만 지금은 다른 문제가 더 중요했다. 그는 말없이 전조를 바라봤다. 직접 말하자니 어디부터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스러웠던 탓이다. 전조는 백옥당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지만 입을 열었다.

"강녕파파, 그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지금 개봉부에서도 그 소식을 접하고 백형의 훌륭한 답안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곧 황궁에서 녹명연이 열리는데 백형도 4등급제자로서 참석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강녕파파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고?"
"그렇습니다."


강녕파파는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백옥당은 강녕파파가 당연히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또한 행운일까?

그러던 차에 강녕파파의 눈이 어디론가 향했다.


"두 사람, 왜 그렇게 손을 꼭 붙잡고 있지?"


잠시 말이 막힌듯 그림같이 서 있다가 전조가 답했다.


"이것도 사정이 있습니다."




"대인께서는 백옥당이 급제한 일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공손책의 질문이었다. 그간 개봉부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보고 듣고 생각해본 끝에 여러가지 생각을 담은 것이었다. 그 속에는 월간개봉을 찢은 백옥당에 대한 원한도(?), 백옥당의 학식에 대한 불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혹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뿐이오."


공손책은 그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재차 물었다.


"무슨 뜻이신지요?"


포증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이번 급제자들 가운데 내가 정체를 미리 알고 있던 이는 백옥당밖에 없소. 보통은 과거급제자라고 하면 공부만 하다가 급제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소?"

"그렇지요."
"다른 급제자들에 대해 우리는 아는 바가 없소. 모르는 급제자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하여 급제한 것으로 생각하고, 백옥당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리가 없다고 낙인찍는다면 이는 백옥당에게 불리한 것이 아니겠소? 우리는 백옥당이 강호인이라는 것만 알지, 백옥당의 학식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고."


공손책은 잠시 포증의 말에 대해 생각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백옥당에 대해 아는 것은 그가 강호인이라는 것 외에도 또 있소. 과거 4등급제는 물론 대단한 영예지만 백옥당은 그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해치거나 치졸한 편법을 썼을 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오. 실제로 백옥당이 급제 이후에 개봉부에서 보여준 태도는 출사를 기뻐하거나 관직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헤매는듯한 모습이었소. "
"그도 그렇군요."
"이런 것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밝혀질 일이니 조급할 필요는 없소."




"그러니까 그 얘기인 즉슨 토끼발의 저주가 걱정이라는 말이냐?"
"네. 혹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아십니까?"


전조와 백옥당은 번갈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며 이번 일에 대해 강녕파파에게 털어놓았다. 곤룡삭에 대해 잘 알던 강녕파파였으니 이번 일에 대해서도 뭔가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모르지만 민수수라면 알 게다."
"민수수라면 함공도의…"
"그래. 내 잘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아이가 예전에 토끼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 같아. 아마 그 토끼발을 보면 그 아이는 출처를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백옥당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풀 방법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제 녹명연에 참석해야하는데…."
"음. 네가 과거 4등급제라는 말을 듣고 아무리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해도 너희들이 알아야겠다 싶어서 내 함공도에 연통을 넣기는 했다. 네가 함공도에 있었다면 네 형제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겠지만, 네가 개봉에 있는 것을 알고 있을테니 누구라도 오기는 할 게야."
"백형, 아무래도 이제 연회에 참석해야 할 것 같소."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를 머릿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전조도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토끼발의 행운이라는 것을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여인들이 뒤로 줄을 서지 않아도, 가는 걸음걸음마다 꽃길이 놓이지 않아도, 그저 둘이 함께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만 보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행운은 없으리라.




"대인께서는 이번 녹명연에 참석하실 뜻이 없으십니까?"
"본관이 말이오?"


포증은 수염을 몇 차례 쓰다듬더니 말했다.


"본관은 이번 과거의 급제자도 아니고 고관(考官)도 아니어서 녹명연에 참석할 명분이 없소."
"하지만 다른 이유로 입궐하실 수는 있지 않습니까? 만약 폐하를 만나시면 대인께 참석하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백옥당과 전호위가 함께 있어야하는 상황이라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대인께서 계시면 일이 생기더라도 수습하기가 용이할 것입니다."
"음…."
"그리고 어쩌면 백옥당에 대한 의혹이 풀릴지도 모릅니다."




"왜 현령이 어머니의 집에 찾아갔지? 날 찾으려면 함공도로 갔어야지."
"백형이 답안표지에 강녕주방을 주소로 적은 것 아니오?"
"아, 맞다."


강녕파파와 헤어진 두 사람은 황궁을 향해 걷고 있었다.


"여러번 왔고 잠입도 해봤지만 오늘만큼 기분이 이상한 적은 처음이야."
"나도 입궐을 여러차례 했지만 이처럼 덤으로 입궐하기는 처음인데다가 그렇게 드나들어도 녹명연은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러고보면 전조는 무과를 치른 것도 아니었다.


"백형은 오늘이 기쁜 날일텐데, 어째 그리 기뻐보이지는 않는구려."
"이 토끼발이 영 신경쓰여서 그런다. 네 손을 잡고 있는 것도 불편하다구."
"공연히 작은 일때문에 큰 기쁨을 놓치지 않는 것이 좋소. 오늘 발령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발령이 오늘 난다고?"
"그럴 수도 있는데 나도 정확히 어찌 되는지는 잘 모르겠소."


담소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연회장 앞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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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미 한번 썼기 때문에 이야기의 다양한 색깔을 위해 다른 분이 이어주시기를 바랬건만 어쩌겠습니까? 아무도 이어주지를 않으시고! 저는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었을 뿐이고! 하여, 제가 조금 더 이었습니다. 저도 크게 부담갖고 쓰지 않았고, 가볍게 브릿지 성격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말 그대로 소소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녹명연만은 꼭 다른 분이 써주시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 앞에서 끊었습니다.
이제 저는 다음 턴에 쓸 수 없으니까요. 헤헤.
꼭 이어주세요. 굽신굽신.

새해 복 듬뿍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