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 project/包靑天

<우화별-3> 좋은 사람들

미주랑 2006. 6. 12. 22:38
遇和別 3.

"전호위 한 사람이 없는데, 개봉부가 텅 빈 것 같군요."

소강절과 전조, 그리고 개봉부 사람들은 모르지만 백옥당까지 함께 떠나보낸 날,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공손책이 말했다. 네 교위들도 공손책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포증의 집무실로 와서는 시립하고 있었다.

"그건 공손선생이 없는 개봉부도 마찬가지였소."

포증이 진심을 말하자, 교위들도 모두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책이 가볍게 미소를 띄워 고마움을 표했다.

사람의 빈 자리라는 것, 소중한 사람일수록 그 자리는 커진다. 전조도, 공손책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 서로의 존재감은 다른 것들과 감히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헌데, 화수현에 왜 전호위가 갔습니까?"

현령이 급사를 당해 그 자리가 비었다. 그리고 그 현령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했다고 한다. 그는 백성들을 위한 좋은 일들을 많이 했고,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따랐다. 그런 이가 죽었으니 슬픈 일이지만, 공손책은 감상주의에 빠져있지 않았다.

"개봉이 이렇게 번잡한데, 내가 자리를 비울수는 없지 않겠소? 사실 이번 일은 방태사의 제안이었소."
"방태사… 라고 하셨습니까?"

사대호법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라는 듯했다. 방태사, 방길이라는 사람에게 개봉부에서 무심할 수 있는 특이한 이는 포증과 전조 두 사람 정도일 것이다. 전조는 어쨌든 본인이 표적대상은 아니니 그렇다고 쳐도, 포증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해치려는 사람을 비호하기까지 하니 개봉부의 다른 사람들은 방태사라면 여러모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입궁했더니 황제께서 화수현의 일을 거론하셨소. 화수현령 주광은 그 공로로 곧 품계를 올려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주광이 급사했다고 하시더이다. 기분이 안좋아 보이셨는데, 그 때 방태사가 나서서 백성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누구라도 빨리 보내는 게 좋겠다고 했소."

공손책 이하 네 명이 모두 포증에게 집중했다.

"황제께서는 과거때문에 당장 인사이동을 하기는 어렵다고 하셨고, 그러자 방태사는 그럼 잠깐만이라도 화수현에 사람을 파견시켜 그 곳의 급한 공무를 처리하도록 해야한다고 했소. 그러면서 전호위를 지목하더군. 상당히 좋은 제안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소."

공손책 이하 사대호법들은 모두 불안했다. 방태사가 포증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본인만 무감각할뿐. 공손책은 가끔 자신을 해치려는 자에게 저렇듯 둔감한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인,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왕조가 무거운 목소리로 한마디했다. 포증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방태사는 포대인은 물론이고 전대인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 전대인을 추천했다는 게 석연치 않습니다."
"그 무슨 소리인가? 태사께서는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에 전호위를 보냈네. 또 전호위조차 이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는데 자네가 왜 그러는가?"

포증은 방태사를 깎아내리는듯한 왕조에게 언성을 높였다. 왕조가 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물거리는데 공손책이 나섰다.

"왕조를 너무 책망하지 마십시오. 다 대인과 전호위를 위해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 일은 이상합니다."
"공손선생까지 어찌 이러시오?"
"제 생각이 맞다면, 방태사는 이번 일로 화수현에 가 있는 전호위를 해치거나, 아니면 전호위가 없어진 개봉부의 대인을 해치려고 할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둘 다일지도 모릅니다."

공손책은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

"저도 대인 생각처럼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정말 불안합니다. 팔현왕이나 왕승상이 진언해서 성사된 일이라면 모를까, 방태사가 진언한 것이라니…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대송은 문을 중시하는 나라이며, 방태사는 강호인을 싫어하고, 전호위는 강호의 무인인데 좋은 뜻으로 그를 추천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만하시오."

포증이 공손책의 말을 끊어버렸다. 다른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것인지, 공손책의 말이 틀리다고 여겨서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전호위도 나도 다치지 않소. 아무일 없을거요. 그러니 안심해도 좋소."

그러나 누구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공손책의 현실적인 말에 오히려 불안감이 구체화되어 더욱 그랬다. 그리고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막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전조일행은 화수현에 도착했다. 전조는 도착하자마자 짧게 인사를 남기고는 관저로 쏙 들어가버렸고, 백옥당은 전조가 자신에게 함께 가자고 말하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강절과 함께 적당한 객잔을 잡았다.

소강절의 얼굴만 보면 속이 끓는 백옥당은 피곤하다며 자신의 방에 들어가 쉬겠다고 했다. 말릴 이유가 없었던 소강절은 백옥당의 옆방을 잡아놓고 산책을 나섰다. 처음엔 스승님의 말씀때문에, 나중에는 완첨을 잊어보려고 여행을 했는데, 계속 그러다보니 지금은 나가서 여러가지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가만히 앉아있는 걸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조금은 늦은 시간이라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만두를 먹은 이후로 쭉 아무것도 먹지를 않아서 간단하게 음식을 먹고 싶기도 했다. 여행에는 나름대로 이력이 붙어 처음오는 곳인데도 어렵지 않게 시장통을 찾아냈다. 찾기는 했어도 거의 파장 분위기여서 음식을 구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옷을 팔던 사람들은 옷을 다시 정리했고, 그릇을 팔던 사람은 조심스럽게 그릇을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사람은 과일장수였는데, 사과와 배 같은 것을 가져다 파는 모양이었다. 어딘가 지쳐보이는 모습이었는데, 그저 조금 피곤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과일장수 아주머니는 아이를 업은 채 과일바구니를 들고 일어서려다가 푹 쓰러지고 말았다.

"에그머니나."

그릇장수가 놀라 정신을 못 차렸다. 옷을 팔던 사람도 다가왔지만, 당황해서 굳은 채 서 있을뿐, 아무 일도 하지를 못했다. 놀라는 게 당연하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으니. 그러나 바로 옆에 있던 소강절은 크게 놀라지도 않고서 침착하게 두 사람을 함께 안아들었다.

"이 근처에 의원이 있습니까?"

소강절이 그렇게 물어보자 그제서야 그릇장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격앙된 듯한 목소리였다.

"아, 네네. 이 골목 입구로 되돌아나가면 맨 끝에 있는 집이 의원이에요. 여휘의원이라고, 이 근방에서는 제일 실력이 좋은 분입지요."

의원이 그리 멀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지 살짝 웃어보였다.

"고맙습니다."

고맙다고?
시장바닥에서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기꺼이 의원으로 데려가 주면서, 대체 뭐가, 누구에게 고맙다는 걸까?

그렇게 안아들고는 침착하게 그릇장수가 알려준 길을 따라갔다. 왠 젊은 남자가 나이든 아주머니를 안고 가니 물건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의원은 그릇장수가 일러준 곳에서 찾을 수 있었고, 의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시장에서 쓰러진 사람인데, 좀 봐주지 않겠소?"

의사는 처음엔 놀라서 환자를 바라봤지만, 얼굴을 보자 곧 평온을 되찾았다.

"어디, 이쪽으로 눕혀보시구려."

소강절은 말없이 여인을 눕히고 그 옆에 아기를 눕혔다. 아기는 쌔근쌔근 잠을 잤고, 여인은 연신 땀을 흘리며 헐떡거렸는데 기절했음에도 보는 이가 애처로울 정도로 힘들어했다.

"이 아주머니는 이 아이와 둘이서만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남편을 잃었지요."

의사가 약을 지으면서 침묵을 깨뜨렸다. 소강절은 그런 의사를 바라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여기 데려다준 사람이 당신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만큼 침착한 사람은 처음보는군요. 항상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는 얼른 치료좀 해보라고 호들갑이던데."

그제야 소강절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스쳤다.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게 기뻤던 걸까? 아니면, 침착하다는 말이 그에게는 칭찬이었던 걸까?

"이 분 몸이 많이 안좋으십니까?"
"지금 상태로는 안좋기는 합니다만, 정확히 하자면 너무 억척스러워서 몸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특별한 병이 있는 건 아닌데,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같이 나와서 이런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니 무쇠로 만든 몸이라고 해도 견딜수가 없지요. 며칠만 쉬어도 몸이 좋아질텐데 말을 듣지 않으니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잠깐 누워있으면 곧 깨어날겁니다."

의원의 말에 소강절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행이군요. 치료비는 얼마를 드리면…"

의원은 소강절의 말을 끊었다.

"아닙니다. 제가 비록 형편이 좋지는 않지만, 어려운 분들을 밟고 일어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따뜻하게 아주머니의 어려운 사연을 일러주던 의원은 갑자기 눈에 띄게 냉랭해졌고, 차가워졌다. 뭔가 말을 잘못했나 싶기도 했지만, 소강절은 별다르게 생각나는 게 없어 평소의 자신답게, 그대로 행동했다.

"아, 정말 좋은 분이시군요. 여휘의원이라면, 혹시 존함이 여휘입니까?"

아주머니의 땀을 닦던 의원은, 화난듯한 자신의 말씨에도 부드럽게 반응하는 소강절의 모습에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어쩌면 괜히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길에서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태연하게 의원에 데려다준 사람과, 아무런 대가없이 치료해주려는 사람.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에게 구태여 화를 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태도만은 여전했지만.

"맞습니다. 이 분은 제가 잘 돌봐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휘는 아주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소강절은 그의 언행과 행동거지에 믿음이 갔다. 자신이 한번 내뱉은 말을 절대 어기지 않으리라는 그의 마음이 보여 여휘의 말대로 의원을 나섰다.

"아."

소강절이 동전 몇 개를 의원에게 건넸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여휘는 저도 모르게 그 돈을 받아들었다.

"이 분이 과일을 파시던데, 제가 배를 하나 가져갔다고 전해주십시오."



시장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의 과일바구니는 마구 흐트러져 있어 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소강절은 쭈그리고 앉아서 배를 뒤적거리더니 색깔이 예쁘고 큼지막한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흰 소매에 살짝 닦아내고는 얼른 한 입 베어물고서 일어나 시장입구로 나갔다.

배는 땀을 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듯 달고 시원하기만 했다.
객잔으로 가는 길에는 배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