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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roject/包靑天

<천자의 나라> 날 희생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막연히 기쁘고 좋았다.
정말 천하제일치라는 별명이 너무나 옳을만큼, 자기 생각은 않고 남 걱정에만 여념이 없는 사람, 남이 불편하면 귀신같이 도와야 마음이 편한 사람, 남에게 상처입고 배신당하는 것은 조용히 가슴속에 묻어버리면서 자신은 남을 조금이라도 상처입힐까 전전긍긍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진심을 보여주고 예의바르며 올곧은 사람. 이런 사람이 가상으로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나보다. 이 사람의 바보스러움을 도저히 비판할 수도, 한심하다고 비웃을 수도 없게 만들 정도로.

이 작품은 소설로서는 좋았다. 하지만 과연 팬픽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약간 의문이다. 사실 전조는 등장할 때마다 같은 시리즈, 혹은 같은 작품 내에서가 아니면 항상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캐릭터였다. 소설 삼협오의에서의 전조는 '알 수가 없는 인물'로, 업무시간에 사대호법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가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 반면, 포청천 시리즈에서의 전조는 때때로 아주 조금은 짓궂거나 장난스럽기도 했지만, 자기 마음만 편하면 몸의 불편은 전혀 돌보지 않는 인물로, 필요한 일에는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이 일부러 하인의 채찍에 맞아준다거나 비둘기 모이를 뒤집어쓰고, 검을 맨손으로 받아내는 무모함과 결부되지는 않았었다. 또 그는 본래 필요한 말을 적재적소에 던질 줄 아는 영리함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작품이 영상물이 아니라 글이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그의 어투에서 항상 비치던 담백함은 사라지고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기교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설정 역시 다르다. 전조가 이 작품에서는 우마차가 다니는 한길에 갓난아이로 버려졌다고 되었지만, 일반적으로는 홀어머니와 둘이 지내다가 어머니가 곧 세상을 떠났다고 회자된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컴플렉스가 과연 무의식중에도 의식상태만큼, 혹은 의식상태이상의 작용을 하게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움이 아닌, 상실감이 꿈 속에서 그렇게나 또렷이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갸웃했다. 또 그는 아이 혼자서는 끌고갈 수도 없을만큼 무거운 사람인데(어미인 편), 아무리 힘좋은 어른이라고는 해도 거의 몸무게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가볍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리고 늘 사용하는 경어체도 약간 어색하다. 시리즈물에서는 형부상서의 아들이나 사대호법에게도 경어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팬픽에서의 어린 시절을 부각하면서 어투도 바뀐 듯하다. 천자의 나라에 드러난 전조의 모습은, 시리즈물에서의 전조가, 팬픽에서 과장되었다는 게 가장 정확하겠지만, 이 과장은 캐릭터의 처세술 자체를 뒤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의 전조와, 지금껏 알고 있던 전조를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나락에 빠뜨리고는 독자들의 감정을 꾹꾹 눌러 짜는 이야기를 상당히 싫어한다. 그런 류의 글들은 주인공을 차라리 당장 죽여버리는 게 나을 정도로 무서운 고통을 줘서 동정심을 유발시키는데, 아무 생각없이 읽으려 해도 작가의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인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약간 예외에 속했는데, 주인공이 비참한 지경에 처했음에도 결연해서 꺾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주인공의 삶은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되어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날 희생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주인공은 이 생각이 투철해서 자신이 받는 고통에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너무나 아파하는데도. 만약 주인공이 잠깐이라도 분노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얼마든지 마음을 상처투성이로 만들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진작 이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행복할 줄 알았고, 자신의 여린 마음까지도 감싸안을 줄 아는 착한 사람이었다.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지킬 가치가 있다는 것, 나를 높이 끌어올리는 이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 나라는 것, 그런 사람들이 땅 한 자락을 밟고 천자(天子)로서의 삶을 지키고 있다는 것. 이런 작가의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을 내줘야만 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것.
내 믿음을 저버릴지 모른다며 타인이 내게 진심을 보여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 마음을 먼저 보여주는 것.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 동안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