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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roject/包靑天

전조에 대한 변론

포증이 청천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것은 권력이나 인맥이라는, 세상 이면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보통 표면적으로만 옳다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내는 인물이기 때문.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하며, 백성이나 관리는 임금에게 충성해야하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한다는 등등의 고전적인 가치를 지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물이다. 고전적 가치는 말 그대로 예전에 수호하던 관념일 뿐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는 없다.

전조도 효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고전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사랑에 상처입어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상처를 받고 살인자가 된 누나를 둔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남자아이에게 어머니는 자신에게 잘해준 것 하나없고 자신을 놀림받게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누나는 계속 공부하라는 말을 하고 어머니를 이해하라고만 하더니 정작 자신은 어머니 주위의 남자들을 죽여 살인자가 된다. 어머니와 누나는 결국 국청에서 자결하고 만다. 이런 사건을 막 겪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위로받고 싶고 가족들의 빈자리에서 오는 상실감이 생길텐데, 전조는 이 남자아이에게 위로나 따뜻한 말보다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 일이 없지 않냐며 때리고 다그치는 방법을 선택한다. 효와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개인의 상처보다 우선시하는, 전형적인 고전적 가치관이다.

하지만 충이라는 가치에 있어서는 강호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황제에게 어전사품대도호위라는 직책을 받았음에도 전조가 충성하는 대상은 포증이지, 황제가 아니다. 황제는 자신의 주군인 포증이 충성하는 대상이기에 자신 역시 충성하는 것이다. 주군을 자기 마음대로 고른 셈이니, 이것은 강호식의 은원관계에 입각해 주군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조는 본질적으로 강호인이고 강호의 생리에 더 익숙한 사람이며, 강호인들도 그를 강호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포증은 충효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강호는 분명한 은원관계를 중시한다. 전조는 포증의 신임을 얻고 그의 오른팔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지만 포증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포증의 생각이지, 전조가 가진 강호식의 가치관이 아니다. 전조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포증이라면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리라고 믿고 관직에 투신한 것. 그렇기 때문에 강호식의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강호의 논리를 내세워 포증에게 감히 맞설 생각은 없다. 여기서 스스로도 판단에 있어서 미묘한 괴리가 생긴다.

두 사람은 입장이 조금 다르다. 완전히 달랐다면 둘 중 한 명이 튕겨져 나왔겠지만 약간의 입장차이라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는다. 동등한 입장에서 일을 했다면 소소한 충돌이 계속 일어났겠지만 상하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부딪히는 일은 없다. 전조는 포증이 시키는 일을 모두 해내지만 자신의 생각과 작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들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참고 떠안아야 한다. 아랫사람이다보니 같은 일을 하려고 해도 몇 배 더 힘든 방법을 쓴다. 포증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말 몇마디를 보태거나 판결을 미루지만 전조는 목숨을 걸거나 각서를 쓴다.

결국 전조 혼자서 두 가지 가치관 사이에서 어려운 외줄타기를 하는 형상. 대개는 두 가치관이 충돌을 벌이지 않지만 간혹 충돌이 생기면 일이 커진다. 예를 들어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이 살인범이 된 경우, 강호의 논리대로라면 어떻게든 도피를 시켜줘야겠지만 집법자로서는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잡아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 여러차례 놓이게 되자 전조는 결정을 내리는 자신의 방식을 찾아낸다. 바로 자신의 마음이 덜 불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 은혜를 입은 사람을 잡아야 한다면 명을 거스를 수 없고 잡아야 하는 것도 맞으니 일단 잡는다. 대신 은혜를 입은 부분에 대해서도 보은을 해야하니 옥살이를 같이 하거나 같이 죽어버리는 식이다. 전조 스스로에게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최선의 길을 찾아 직접 선택을 하는 것이기에 후회도 남지 않고 본인의 마음도 당연히 편해진다.

대신 위험부담도 있다. 이 방법은 다른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으로 상처입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의 마음이 편한 대처가 자신을 죽이는 것이 되기도 한다. 중독되었을 때, 사매가 하나뿐인 해약을 가져오자 중독된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며 자신은 죽음을 감수하고 해약을 넘겨준다. 자신의 목숨도 그렇고 사매의 마음도 생각해주지 않은 결과이다. 다른 경우로, 도와주고 싶은 사람을 체포해야한다면 일단 체포를 하기 때문에 체포되는 당사자에게 원망을 듣게 되고, 같이 옥살이를 하거나 죽는 것 역시 개봉육자가 절대 원치 않을 대처다. 전조 스스로의 마음은 편하겠지만 누구에게도 최선의 결과를 주지 못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들만 뒤틀어놓는다.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나마 이해를 받는다면 다행스럽겠지만.

게다가 자신의 마음이 편한지, 아닌지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자기자신을 완전히 믿을 수 있어야만 신뢰가능한 결정이 된다. 전조 스스로는 자신의 마음만을 근거로 놓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결정이 세상이 요구하는 선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자기자신에게도 후회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하려면 무의식적으로 감안하는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 모든 것을 다 지켜내려면 얼마나 강해야 할런지…. 그나마 몸도 마음도 모두 강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고 있지 않나 싶다.

겉으로 보기에도 맡겨지는 일이 많아 참 힘들게 지내는 사람이다. 언젠가 했던 말처럼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겠지만. 그렇게 힘든데도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참 고맙달까.


여담으로 전조의 이름을 한자로 적으면 展昭. KBS에서 꾸준히 전조라고 부른 탓에 원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색하다. 하긴 전조라고 하는 쪽이 원어발음에 더 가깝기는 하다.

이 이야기는 포청천 오리지널 시리즈 기준. 원작에서는 업무시간에 사대호법과 술을 마시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연애성공률 0%라는 유감스러운 데이터도 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