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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roject/包靑天

<우화별-2> 놀고 먹는 고양이

遇和別 2.

"음…"

눈을 찌르는 듯 밝은 햇살에 백옥당은 살며시 깨어났다. 그러나 곧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눈을 감았다. 혼자 객잔에 묵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일어날까도 했지만, 결국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반 시진은 뒤척였던 모양이다. 자는 데 지쳐 일어나서야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창으로 다가갔더니 맑은 공기가 시원스럽게 들어오고 있었다. 2인용 객실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창이 상당히 컸다. 백옥당은 바깥을 바라보고 싶어서 창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개봉 거리를 분주하게 다니며 모두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틈에 혼자 한가하게 쉬는 기분이 들어 왠지모를 여유로움에 기분이 좋아졌다.

똑똑.
문이 조금씩 밀리는데 그 틈에 보이는 사람은 점소이였다. 보통 손님이 자는 객실까지는 잘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무슨 일일까?

"저, 백대협. 벌써 사시입니다. 다른 때는 개봉에 오시면 오래 머무르셨지만 이번엔 하루만 묵고 갈 것 같다고 하셔서… 한번 여쭤보라고…"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소강절이 보이지 않았다. 숙박비 절반을 내줘야 할 사람이 어딜 갔단 말인가.

"어제 나와 함께 있던 그 사람은…"
"아, 그 분은 아침 일찍 개봉부로 간다고 하시며 나가셨습니다. 백대협께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깊이 잠드셔서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고 하시던데요."

또 다시 휘청
비용 나가는 걸 최대한 줄여보자고 한 제의를 했던 건데, 유유히 사라져버리다니. 이 난관을 어찌 타개해야 한단 말인가. 사실 남을 탓할 것도 없는게,

"백대협이 먼저 방을 같이 쓰자고 하신거라면서요. 그러니까 돈이나 퇴실 문제는 백대협께 물어보면 된다고…"

그렇다. 애초부터 비용문제를 명확히 해 두지 않은 백옥당의 잘못이었다. 소강절은 이미 개봉부에 가버렸다니 어찌하랴. 결국 자력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점소이, 부탁이 있소."
"네?"
"90냥에 안되겠소?"



소강절은 시원한 아침바람을 맞으며 개봉부를 향해 걸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길은 조용했고, 오가는 사람도 적었다. 그저 그 뿐인데도 기분은 너무나 상쾌했다. 길가의 나무와 꽃들, 아직은 물기를 머금은 듯 보이는 햇빛은 마음을 들뜨게 하면서도 어느 순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좋은 길을 지나니 좋은 곳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좋은 사람들을 찾았다.

"포대인을 뵈러 왔습니다."

소강절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경비병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누구신데 이 시간에 대인을 찾으시오?"
"저는 소강절이라 합니다. 유랑하던 차에 한번 들렀습니다."
"미리 만나뵙기로 약속하고 온 거요?"

이것저것 깐깐하게 캐묻는 품이 왠지 들여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약속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약속을 안했다고 들여보내주지 않을거라고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 때 장룡과 조호가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소선생. 어쩐 일이십니까?"
"오랜만에 들러봤습니다. 다른 분들은 안녕하십니까?"
"교위님, 아는 사이십니까?"

조호가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나누자 경비병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경비병의 질문에 답해준 것은 장룡이었다.

"이 분은 명희설이 나타났을 때 황실과 개봉부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지. 그런데 왜 들어오지 않으시고 여기 계십니까? 어서 들어오시지요."

장룡과 조호가 맞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였지만, 소강절은 자신을 막던 경비병에게 물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예예.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세요."

장룡과 조호는 왜 소강절이 경비병에게 저렇게 묻는지 의아했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전호위, 그럼 잘 부탁하네. 자네에게 이런 일까지 맡기게 되다니 미안하군."
"아닙니다. 대인, 일이 마무리되는대로 곧 돌아오겠습니다."
"대인, 소선생이 오셨습니다!"

장룡이 포증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조호도 곧이어 들어왔고, 소강절도 뒤따라 들어와 인사를 했다.

"포대인, 전대인,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개봉부 식구들의 기억 속에서 소강절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워낙 사람이 천진하고 장난기가 많았던 데다가 개봉에서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는 바람에 조금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개봉부가 피해를 입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소강절이 없었으면 송은 내기에 패배하여 국권을 넘겨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개봉부 사람들은 소강절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개봉부는 별일 없었소이다. 그런데 소선생은 어쩐 일로 개봉에 오셨소? 지난번 명희설사건 이후 다시 수행하러 가신 게 아니었소? 어쨌든 앉으시지요."

포증이 인삿말을 받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소강절은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차를 드시겠습니까? 포대인이 저와 나누겠다고 하셔서 마침 차를 우리고 있었습니다."

전조가 찻잔에 차를 한 잔 따르며 소강절에게 말을 던졌다. 장룡과 조호는 문 옆에 시립한 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화창한 날에 반가운 분들이 주시는 차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전조도 따라 웃으며 찻잔 두 개에 차를 따라 포증과 소강절 옆에 하나씩 놓았다. 소강절이 약간 의아한듯 묻는다.

"공손선생은 어디 가셨습니까? 왕교위와 마교위도 보이지를 않는군요."
"공손선생은 성묘하러 갔는데, 내일쯤 돌아올거요. 두 교위는 내가 순찰을 보냈소이다."

포증이 대답했지만, 소강절의 의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런데 찻잔은 왜 두개뿐이지요? 다른 분들은 차를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좋아하지만 저는 곧 떠나야하고, 장룡과 조호는 두 교위와 순찰교대를 하려다 소선생을 보고 돌아온 것 같으니 다시 나가야 할겁니다."

찻잔이 두개뿐인 이유는 원래 전조가 떠나기 전에, 포증과 전조 두 사람만 잠깐 차를 마시려고 했기 때문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소강절은 그만큼 반가운 손님이었고, 전조는 포증의 마음을 받은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조가 두 교위를 바라보며 말하자, 장룡과 조호는 그제야 순시를 가다 되돌아온 걸 떠올렸다.

"전대인은 어디를 가십니까?"
"화수현에 갑니다. 현령이 급사를 당했는데 아시다시피 과거시험때문에 조정에서도 갑자기 인사발령을 할 상황이 아니어서 제가 사흘정도만 가 있기로 했습니다."
"수사차 가시는 겁니까?
"살인사건이 아니니 수사는 하지 않아도 될 거고, 저는 잠시 빈 자리를 채워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전조가 의외의 제안에 조금 당황했다. 전조는 명백히 공무를 수행하러 가는 중이었고, 이렇게나 설명을 했는데 소강절이 알아듣지 못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함께 가자니? 포증조차도 의아했는지 소강절에게 묻는다.

"전호위는 어차피 공무를 수행하느라 바쁠거요. 화수현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볼일은 없습니다. 저는 어차피 유랑하는 중이니 많은 곳을 둘러볼수록 좋지요. 전대인이 사흘후에 개봉부로 돌아온다니 저도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과거시험때문에 개봉의 객잔이 전부 차서 묵을 곳이 없더군요. 화수현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개봉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처음엔 저렴한 객잔을 하나 잡아 객잔과 개봉부를 오가며 개봉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볼 생각이었는데 객잔의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개봉부 사람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열흘정도 머무르려 했지만 과거가 끝나고 사람들이 어느정도 개봉에서 빠져나간 이후에나 객잔의 가격이 조금 떨어질 것 같았다. 어제는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고급 숙소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보냈으나, 그런 요행을 바라면서 개봉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묵을 곳이 필요하다면 부내의 방을 내 줄 수도 있소. 그런 이유라면 굳이 화수현까지 가지 않아도 되지 않겠소?"
"이번에는 여러분을 도와드리러 온 것이 아닌데 부내의 방을 쓸 수는 없지요. 그리고 화수현이라는 곳은 가보지 못했으니 이 기회에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합니다. 날은 맑고 길에는 꽃이 가득하니 여행하기 좋은 날씨이기도 하고요."

개봉에 사람이 몰린 것은 사고나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졌다고 바꿔 표현할 수도 있었다. 내일까지는 공손책도 없고 이제 전조까지 나가서 손이 모자라는 판에 부내에 손님이 머물러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하는 상황은 아무래도 부담이었다. 물론 반가운 손님이지만 부담은 부담이다. 전조도 화수현에서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기에 사흘간 다른 사람까지 신경쓰는 것은 곤란했다. 하지만 가는 길만 함께 가고 소강절은 소강절대로 객잔에 묵으며, 전조는 전조대로 업무해결을 하고 함께 돌아온다면, 이는 최선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소강절은 길동무로는 좋은 상대였으니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가장 훌륭한 해결방안을 제시한 셈이었다. 전조와 포증은 한순간에 이 사실을 이해했다.

"전호위, 자네만 좋다면 그리하게."
"좋습니다. 그럼 같이 가시지요. 아마 두 시진이면 도착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시간을 지체했으니 이제 출발해야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러지요. 포대인, 사흘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오자마자 이렇게 되어 미안하오. 사흘후에 전호위와 함께 오시오."
"그럼 다들 안녕히 계십시오."



백옥당은 청운객잔을 나섰다. 객잔주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능글맞은 웃음을 뒤로한 채.
그래도 다행히 숙박비를 조금 깎았다. 점소이가 백옥당을 좋게 본건지, 단지 흥정에 소질이 없었는지, 아니면 자주 들르던 단골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옥당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곧 알았다며 90냥만 달라고 했다. 물론 이 태도를 본 백옥당이 '한 80냥, 아니 70냥, 아니 한 60냥에 해달라고 해볼걸 그랬나?'라고 생각했다는 건 비밀이다.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길을 걷는데 어디서 자주 본 사람이 앞을 스쳐갔다. 자신과 같은 흰 옷을 입은 사람이.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고양이? 하지만 붉은 관복이 아니라 남색 유삼을 입고 있었다.

'고양이를 데려가려고 개봉부에 간다는 거였나? 보통은 공직자의 태도가 어쩌고 하면서 무시할텐데. 대체 저 사람, 고양이와 무슨 사이길래?'
"이봐, 전조!"

전조가 뒤를 돌아본다. 당연히 그를 부른 사람은 백옥당이었다. 소강절도 뒤를 돌아봤다.

"아니, 백형. 개봉에 있었소? 왜 날 찾지 않고…"
"아, 그래서 찾아오지 않았냐? 그런데 어디가?"
"일이 있어 화수현에 가는 중이었소. 참, 소개가 늦었구료. 이 분은 소강절이라는 분으로…"
"백대협과는 안면이 있습니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별 말씀을."

사실 소강절은 백옥당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이나마 파악한 상태였지만, 백옥당은 소강절이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이길래 개봉부를 들락거리며 저렇게나 전조와 친한지 도무지 알지를 못했다. 빈 돈주머니가 백옥당에게 밥좀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백옥당은 주머니를 꽉 쥐며 울음을 멈추라고 협박할 뿐이었다.

"어제 100냥짜리 수이투름은 참 좋더군요. 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몸이라 그런 좋은 방은 처음 써봤습니다."
"100냥? 수이투름? 백형, 그럼…"

상대는 전조였지만, 백옥당은 복잡하게 이것저것 설명하며 동정을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야야, 화수현에 간다고 했냐? 나도 같이가자. 과거시험인가뭔가 이거나 끝나야 개봉에서 좀 지낼만 하겠다."
"백형, 난 놀러가는 게 아니오. 공무수행차 가는거라…"
"알았어알았어. 방해 안할테니까 그냥 같이있다 같이 오던지 하자. 야, 먹을것좀 사올게. 잠깐 기다려."

저 쪽에 만두가게가 하나 보였다. 그러고보니 모두 아침 먹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갑자기 백옥당이 휑하니 달려간 만두가게는 인기가 좋은 곳인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조도 잠깐 간단히 식사라도 하고 가는 것은 괜찮겠지 싶어 잠시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소강절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주먹을 쥐어 가볍게 손바닥을 쳤다.

"아, 맞다. 고양이!"

전조는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백옥당의 목소리가 언제 이렇게 컸었나 싶어 놀라 백옥당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만두가게에 간 백옥당은 차례를 기다리며 조용히 서 있을 뿐이어서 어디선가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

"전대협, 개봉에 혹시 이름난 고양이가 있습니까?"
"이름난… 고양이라고요?"

아무래도 고양이를 찾은 사람은 백옥당이 아니라 소강절이었던 모양이다. 어묘라는 별명이 제법 유명한건 사실이지만, 소강절이 알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소강절은 강호인도 아니었고, 조정에 몸담은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모를것도 없었다. 또 확실치는 않지만 아까 이야기로 보아 백옥당과 소강절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기에 그 연관성 하나만으로도 소강절은 어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네, 백대협이 어제 말해줬는데, 개봉에 쥐를 못잡으면서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 잘 먹고 잘 사는 고양이가 있다 했습니다."

역시 그랬다. 백옥당이 절대 전조를 좋게 말할리가 없었다. 전조는 마음속으로 저 쪽에 보이는 흰 쥐를 말 그대로 쥐잡듯이 두들겨줄까 했지만, 소강절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소강절은 그 고양이가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전조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쥐를 못잡는 고양이가 있을 리 없으니 쥐의 삶을 생각하여 쥐를 일부러 잡지 않는 거겠지요. 미물인 고양이가 인의도덕을 아는 듯 하기에 백대협께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둘러 개봉부로 가다 잊었군요."
"전조, 만두먹어. 전에도 인기 많더니 요즘도 맛있네."

이미 하나를 집어 오물거리며 어느새 다가온 흰 쥐가 말했다. 만두를 사 오는 짧은 시간동안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는 백옥당은 아주 천연덕스러웠다. 전조의 눈이 정말 고양이처럼 보여서 고개를 갸웃했으나, 만두 하나를 집어먹는 모습을 보고는 평소의 전조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했다. 그 틈에 소강절도 하나씩 둘씩 만두를 집어먹었는데 백옥당은 '내가 언제 너더러 먹으라던?'이라는 마음을 눈에 가득 담아 보냈다. 그러나 소강절은 백옥당의 눈이 어딘지 모르게 쥐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전조는 그답지 않게 길거리에서 식사를 했다. 더욱 그답지 않은 모습은 친한 사람들 두 명과 함께였는데도 그가 내내 말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다른 두 사람은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화수현은 개봉에서 멀지 않은 곳. 두 시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