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AN project/包靑天

<우화별-4> 손님맞이

遇和別 4.

"전대인께 인사올립니다."
"일어나십시오. 그런데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화수현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뭘해야 하는지 얼떨떨한 전조였다. 주광 밑에도 포증 아래의 공손책처럼 책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우선 그를 만나보았다.

"글쎄요.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현령께서는 주무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도 아니고, 며칠간의 일은 저나 다른 관원들이 맡아도 되는데 어째서 전대인을 여기까지 보냈는지…"

그는 침착했지만, 상당히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어 아직껏 슬픔이 다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시던 현령이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전조 자신이야말로 포증이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면, 이정도로나마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어쨌든 특별히 처리할 일이 없다는데, 자청해서 뭔가 일을 하는 것은 오히려 화수현 관리들에게 현령의 빈자리만 더 크게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는 명을 받았으니 신임현령이 이곳에 온다는 통보가 올 때까지는 화수현에 있어야 합니다. 제가 어디 머무를 곳이 있습니까?"
"전대인이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관저의 방을 하나 치워두었습니다. 누추하지만 그 곳을 쓰시면 됩니다."

현령을 대신해 온 만큼 전조는 당연히 현령의 방을 써야 옳았다. 그리고 당연히 현령의 방이 가장 좋은 방이리라. 그러나 전조는 이들의 마음이 너무나 절실히 와닿았기에 그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그럼 안내해 주십시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서야 깊은 밤이 찾아왔다. 소강절도, 백옥당도, 포증도, 전조도 모두 잠들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감춰주었다. 사람들의 험한 잠버릇도, 낮에는 괜히 부리던 심술도 모두 잠이라는 이름 아래 감싸안는다. 비록 그 어둠이 따뜻하지는 않을지라도.

이 어둠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둠과도 같은 빛깔의 야행복을 차려입고 얼굴마저 검은 복면으로 가린 사람이었다. 그는 훌쩍 담을 넘어들어가 발소리까지 죽여가며 달려갔다. 어둠 속에서 고요함과 적막함을 가장했지만, 그의 연기가 부족했는지 담 안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불리했다. 나타난 사람이 차려입은 옷은 붉은 옷에 장식까지 가미된 화려한 관복.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야행복을 입은 사람에 비해서는 발견될 가능성이 너무도 높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잠시 후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동료가 나타나 주었다.

"무슨 일인가? 장룡, 개봉부에 누가 침입했나?"
"그래, 마한. 조심해. 고수의 기운이야."

왕조와 조호는 각기 숙소에서 자는건지, 장룡의 큰 목소리에 나타난 사람은 마한뿐이었다. 오늘 번은 장룡 혼자였기에 놀라 나타난 마한은 잘 때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슉.
뭔가 스쳐가는 소리가 나자 마한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장룡이 순간 마한에게 눈을 돌렸는데 마한의 오른쪽 다리에 작은 표창이 박힌 것을 발견한 그 때, 장룡의 다리에도 같은 표창이 파고 들었다.

"독…인가…"

장룡과 마한 모두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마한은 주저앉고 말았고, 장룡은 그나마 검을 쥐고 땅에 검을 짚어 간신히 몸만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표창을 던진 자객의 공격을 받는다면, 두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었다.

"독은 아닙니다. 안심하십시오."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꽤나 낮은 목소리. 두 사람의 눈에 검디검은 인영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개봉부에 침입한 이유가 뭐냐?"

몸을 다쳐서도 자신이나 자신의 친구가 아닌, 개봉부를 먼저 걱정하는가. 그 의기에는 감탄했지만, 자객은 그보다 중요한 용무가 있었다.

"당신들 두 사람에게는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두 분은 곧 여기서 잠들게 될 것이고, 내일 정오면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당신들 상관에게 일이 있어 왔으니 잠시 쉬어주셔야겠습니다."
"기다려, 내가 여기 있는 한 개봉부의 누구도 해칠 수 없다."

거의 기진한 상태에서도 정신만은 끝까지 놓지 않은 마한이었다. 하지만 장룡은 조금씩 잠이 들고 있는지 몸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자객은 장룡과 마한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절대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적의를 품은 고수들에게 이처럼 가까이 가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호인으로서 이런 약을 쓰는 게 비겁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당신들 수준의 무사들을 상하게 하는 건 아까운 일이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약을 쓰지 않고서 당신들이 날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면 이런 표창을 급소에 던지거나, 아니면 열개씩은 꽂아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미안합니다."
"안돼… 대인만은 절대로…"

풀썩.
마한과 장룡이 동시에 쓰러졌다. 하지만 자객은 나란히 쓰러진 두 사람을 그냥 두고 다시 몸을 숨겼다. 걱정하고 존중하는 듯 늘어놓은 일장연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자객은 곧 포증이 자는 곳으로 곧바로 달려갔다. 어둠은 아까처럼 그의 몸을 숨겨주었고, 누구도 그를 막지 않았다.

문은 조심스럽게 열었다. 잠가두지 않았기에 가벼운 힘으로도 쉽게 열렸다. 포증은 더없이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자객은 그 모습에 솟아오르는 욕지기를 억누르느라 소리없이 가슴을 쥐어뜯었다.

자객은 소리없이 칼을 뽑아들었다. 이번엔 표창따위가 아니었다. 칼은 자객이 열고 온 문 밖의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검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자신을 막는 자는 그 누구라도 베어버리겠다는 무서운 의지가.

하지만 그 순간, 포증이 검의 달빛에 눈이 부셔 눈을 떴다. 그리고 앞뒤정황을 파악하는데는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누구냐?"
"깨어나셨군."



"이 시간에 일어나셨습니까?"
"아닙니다. 실은 잠을 못잤습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봅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바람이라도 조금 쐬어볼까 해서 관복도 입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와봤는데, 아까의 책사가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조는 아직 책사의 이름도 몰랐다.

실은 잠자리가 바뀐 것보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탓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금 예민한 편이기는 해도, 타지에 나가는 것이 워낙 일상이었던 덕분에 잠자리가 바뀌는 것에는 이제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다만, 뭐가 불길한지 전조 스스로도 알 수가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

"사실 저도 현령님이 돌아가신날 잠을 못잤습니다."

슬퍼서? 아니면 그저 잠이 오지를 않아서? 그도 아니면… 나처럼 안정을 찾지 못해서?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냥 조금 불안하더군요. 다음날에야 현령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지요."
"괜찮…으십니까?"

책사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와서 전조는 예의를 갖춘 옷차림이 아님에도, 상대를 걱정하는 따뜻한 말을 던졌다. 책사에게는 자신이 섬기던 사람을 빼앗아간 세상에 대한 미움, 그리고 원망까지 그대로 비쳐 전조는 질문을 하면서도 답에 얼마나 큰 상처가 담겨 있을지 조금은 두려웠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괜찮은지 아닌지…"

가장 무미건조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전조는 불길한 예감을 증폭시키는 것만 같아서 이야기를 더 하고싶지가 않았다.

"기운내십시오. 저는 이만 들어가 쉬겠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책사는 일어나서 전조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앉아서 달을 바라보았다. 전조는 그런 책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