遇和別 6.
"여기 혹시 소씨가 묵고 있습니까?"
"소씨요? 어디보자…. 아, 있습니다."
전조는 백옥당의 예상을 깨고 객잔에 나타났다. 그도 그럴것이 전조는 슬픔에 젖어 현령의 빈 자리를 치우기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 없는 일을 찾아 처리할만한 인정없는 일벌레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어진 처소에 갇히다시피 한 채로 주는 밥이나 받아먹고 해가 지면 자는 것이 지난 이틀간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문지기가 뚱한 얼굴로 누가 편지를 줬다며 소강절의 편지를 쥐어줬을때, 그리고 연이어 개봉부의 병졸이 포대인의 전갈이라며 이제 돌아와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을때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저 쪽 복도로 들어가셔서 맨 끝에 있는 방입니다."
"고맙습니다."
그즈음 백옥당은 소강절의 방에서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이후로 자기 방이 있으면서도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그 때 백옥당의 생각은,
'내기란 모름지기 확실히 이겨줘야하니까.'
하지만 소강절은 침대에 누운 채로 객잔 서가에 꽂힌 책을 집어들어 조용히 읽을 뿐 백옥당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똑똑.
문을 두 번, 살짝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설마!'
"들어오세요."
소강절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읽고 있던 책은 읽던 부분에 손가락을 넣고 덮었다.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사람은 소강절의 예상을 뒤엎지 않은 그 사람, 전조였다.
"전조, 대체 왜 나타난거야?"
백옥당의 외침에 전조는 흠칫했다. 평소같으면 그 표현은 비뚤어졌을지언정 반갑다는 표시를 할 사람인데 왜 나타났냐니, 뭔가 이상했다.
"소선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소. 저녁에 시간이 괜찮으면 오라시기에…"
전조의 오른손에는 편지 한 통이 들려있었다. 흰 종이에 검은 색으로 글씨가 씌여있는, 가장 일반적인 편지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글귀도 외관만큼이나 소박하고 담백했기에 전조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조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생각이 틀린 것은 백옥당뿐.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전대협. 그리고 백대협께서는 나가서 술을 사다주시겠습니까?"
소강절은 전조의 방문을 보고 기쁜 마음에 미소를 띠었지만, 백옥당에게 그것이 소강절의 생각만큼 순수하게 비칠리 만무했다.
"아, 오늘 백형이 사는거요? 나는 죽엽청, 야채볶음, 화권을 사다주시오. 배가 고프니 좀 많이 사오셔도 괜찮소."
"저는 아무거나 다 먹습니다."
전조는 항상 먹던 음식들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술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저 백옥당이 산다니 아무 부담이 없었던듯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마지막에 덧붙는 소강절의 한 마디가 그리도 얄미울수가 없었다. 그래도 백옥당은 입을 앙다물고 방 밖으로 나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언제와도 같이. 이번에 침묵, 아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을 꺼낸 사람은 전조였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어떻게 개봉에 오셨습니까?"
"음,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군요."
소강절은 원탁위에 놓인 물잔을 집어 입에 가져가는듯 하더니 순식간에 잔을 비워냈다.
"지난번 개봉에 왔을 때, 저는 삶의 덧없음, 그리고 사람이 변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 일은 어찌된 영문인지 저의 도력을 상당히 끌어올려 주었지요."
말을 잇는 그의 표정은 명확했다. 밝은 미소와 순수함. 그러나 조금은 그늘진 모습이, 예리하면서도 상처를 받아본 전조에게는 분명하게 보였다. 전조는, 지난해 그가 겪었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개봉부의 요청으로 스승을 대신해 소강절이 나타났다. 그를 부른 이유는 명희설이라는 남당의 유민이 빼어난 미모로 황제를 현혹하고 내기를 통해 송의 국권을 빼앗으려는 음모가 있었기 때문. 그 과정에서 빼앗긴 옥새를 되찾아오기 위해 전조 자신도 독사가 우글대는 상자에 손을 넣는 모험을 해야했다. 소강절은 맡겨진 일들은 무리없이 해냈지만, 어느순간부터 증도장의 딸인 증완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첨은 전조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었고, 결국 소강절은 자신의 도력을 높이는 수련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완첨에게 호위를 맡겼다. 전조로서는 값없이 목숨을 버릴지 모르는 이런 도박에 몸을 내맡기는 소강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강절은 죽지 않았지만, 그를 대신해서 완첨이 목숨을 잃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 모든 깨달음은 전부 완첨이 희생한 탓이었습니다. 저는 스승님께 돌아가는동안, 그리고 돌아가서 수련하는 중에도 이 일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은 더없이 가벼워보였다.
"스승님께도 그게 그대로 비쳤나봅니다. 제가 한심해보였는지, 안쓰러워 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에 나가 더 많은 것을 보고 행복을 깨닫거든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이제 개봉부의 분들과 함께 며칠 지내다 돌아갈 생각입니다."
행복. 그게 무엇일런지. 나는 그게 뭔지 알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행복을 깨달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돌아가보려 합니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명예나 권세, 재산보다 저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마음, 자연과 순리,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질 때, 저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강절의 말을 듣고 잠시 곱씹던 전조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군요. 참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소강절에게는 전조의 마음이 비치고 있었다. 전조는 자기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는걸까?
"전대협은 어떠십니까?"
"네?"
"이러한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저는…"
전조가 생각을 정리하느라 망설이자 소강절은 답해줄 사람을 아예 바꿔버렸다.
"음, 잘 모르시겠다면 저기 백대협이 가져오신 죽엽청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무슨 뜬금없는 소리요?"
한층 날카로워진 백옥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음식을 몇 겹 쌓은 음식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백대협이 보기에 전대협은 어떻습니까? 전대협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보십니까?"
"하하하하."
전조는 물론 질문을 한 소강절마저도 조금 놀랐다. 백옥당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가 부러져라 웃었다. 음식들을 이미 상에 내려놓은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음식들이 바닥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조는 세 개의 잔에 죽엽청을 조금씩 따르고 있었다.
"그 참 듣다듣다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이봐요. 전조는 절대 행복해지지 못해요."
"백형, 너무… 악담을 하시는구려."
듣던 전조가 백옥당의 말이 조금은 신경이 쓰였는지 기어이 말을 끊고 한 마디를 토해냈다. 문제는 백옥당이 그 말을 전부 무시했다는 거지만.
"전조는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지 오래요. 대신 자신에게 떳떳하고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길을 선택했지. 게다가 관리로 있는데 행복을 찾을 여유가 있을 것 같소? 전조, 할 말 있으면 해봐. 내 말이 틀렸냐?"
조금 전과도 같이 잠시 생각하던 전조가 이번에는 하고싶은 말을 온전히 끌어냈다.
"글쎄… 백형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소. 그렇기는 해도…"
"그렇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정말 불행한 것 같소."
소강절은 아까 전조가 했던 것처럼 전조의 얼굴에 숨겨진 미소를 찾아냈다. 전조는 지금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백옥당에게는 겉으로 드러난 어두운 표정만이 보였다.
"그놈의 개봉부에 매여서 사랑하는 여자도 잃었고 죽을 고비도 넘겼고, 네게 남은건 이제 관모에 잘난 개봉부와 개봉부 식구들, 그리고 너를 인정하는 강호인들 뿐이야. 그게 네가 그리던 행복이었나? 강호인들에게 등을 돌리면서까지."
"등을 돌린 일은 없소. 관리의 일이란 백형이 생각하는만큼 한심한 일이 아니며, 나는 뜻있는 협객지사들을 존중하고 있소. 다만, 그들이 내가 선택한 길에 반감을 품어 나를 배척하겠다면 유감스럽기는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전조는, 죽엽청을 홀로 들이키며 쓰게 웃었다.
"백형이 보기엔 내가 그리도 불쌍한 사람이었나보오. 하지만 난 내 삶에 만족하고, 그걸로 충분하오. 소선생께서는 저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네? 저 말입니까?"
야채볶음이며 화권을 두 손으로 열심히 집어먹던 그는 전조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전조의 대화상대가 바뀌자 백옥당은 자신도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대협 스스로가 전대협을 어떻게 보는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음, 굳이 제 기준에 맞추기를 원하신다면 한 번 해보십시오. 전대협에게는 명예, 권세, 재산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전대협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물론 저다운 모습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남을 시샘하거나 우월감에 빠진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연과 순리, 운명을 거스르셨습니까?"
"……거스른지 오래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용궁에 전해내려오는 구슬도 먹었고, 인간이 가서는 안될 곳에도 가봤습니다."
"그렇다면, 전대협은 행복하지 않으시겠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전대협은 충분히 행복하십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전대협은 이유없이 용궁의 구슬을 탐내고 금단의 장소에 함부로 가실 분이 아니니까요."
"아…"
가만히 듣고 있던 백옥당이 말했다.
"선생이 말씀하신 것들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전조에게 필요한건 그런 것이 아니오.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때, 자기자신에게 떳떳할 때, 그리고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 전조는 행복할거요."
"음… 전대협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전조는 잠시 고심하는듯 하더니 이내 답을 내렸다.
"두 분 말씀 중 한 가지를 골라 취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제게는 두 분 말씀이 모두 맞는 것 같군요.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기때문에 저다운 모습을 잃고싶지 않고, 또 그것은 저 자신에게 떳떳하다는 것과도 상통합니다. 자연과 순리, 운명을 거스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하다보니 마음이 아팠고,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키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전조는 죽엽청 한 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그저 살아가고 있나봅니다."
맑은 미소를 띠며 한쪽 팔꿈치를 손으로 받쳐든 채 소강절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 행복하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백옥당과 소강절 두 사람도 술잔을 들어올렸다.
"여기 혹시 소씨가 묵고 있습니까?"
"소씨요? 어디보자…. 아, 있습니다."
전조는 백옥당의 예상을 깨고 객잔에 나타났다. 그도 그럴것이 전조는 슬픔에 젖어 현령의 빈 자리를 치우기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 없는 일을 찾아 처리할만한 인정없는 일벌레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어진 처소에 갇히다시피 한 채로 주는 밥이나 받아먹고 해가 지면 자는 것이 지난 이틀간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문지기가 뚱한 얼굴로 누가 편지를 줬다며 소강절의 편지를 쥐어줬을때, 그리고 연이어 개봉부의 병졸이 포대인의 전갈이라며 이제 돌아와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을때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저 쪽 복도로 들어가셔서 맨 끝에 있는 방입니다."
"고맙습니다."
그즈음 백옥당은 소강절의 방에서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이후로 자기 방이 있으면서도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그 때 백옥당의 생각은,
'내기란 모름지기 확실히 이겨줘야하니까.'
하지만 소강절은 침대에 누운 채로 객잔 서가에 꽂힌 책을 집어들어 조용히 읽을 뿐 백옥당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똑똑.
문을 두 번, 살짝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설마!'
"들어오세요."
소강절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읽고 있던 책은 읽던 부분에 손가락을 넣고 덮었다.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사람은 소강절의 예상을 뒤엎지 않은 그 사람, 전조였다.
"전조, 대체 왜 나타난거야?"
백옥당의 외침에 전조는 흠칫했다. 평소같으면 그 표현은 비뚤어졌을지언정 반갑다는 표시를 할 사람인데 왜 나타났냐니, 뭔가 이상했다.
"소선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소. 저녁에 시간이 괜찮으면 오라시기에…"
전조의 오른손에는 편지 한 통이 들려있었다. 흰 종이에 검은 색으로 글씨가 씌여있는, 가장 일반적인 편지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글귀도 외관만큼이나 소박하고 담백했기에 전조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조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생각이 틀린 것은 백옥당뿐.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전대협. 그리고 백대협께서는 나가서 술을 사다주시겠습니까?"
소강절은 전조의 방문을 보고 기쁜 마음에 미소를 띠었지만, 백옥당에게 그것이 소강절의 생각만큼 순수하게 비칠리 만무했다.
"아, 오늘 백형이 사는거요? 나는 죽엽청, 야채볶음, 화권을 사다주시오. 배가 고프니 좀 많이 사오셔도 괜찮소."
"저는 아무거나 다 먹습니다."
전조는 항상 먹던 음식들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술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저 백옥당이 산다니 아무 부담이 없었던듯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마지막에 덧붙는 소강절의 한 마디가 그리도 얄미울수가 없었다. 그래도 백옥당은 입을 앙다물고 방 밖으로 나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언제와도 같이. 이번에 침묵, 아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을 꺼낸 사람은 전조였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어떻게 개봉에 오셨습니까?"
"음,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군요."
소강절은 원탁위에 놓인 물잔을 집어 입에 가져가는듯 하더니 순식간에 잔을 비워냈다.
"지난번 개봉에 왔을 때, 저는 삶의 덧없음, 그리고 사람이 변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 일은 어찌된 영문인지 저의 도력을 상당히 끌어올려 주었지요."
말을 잇는 그의 표정은 명확했다. 밝은 미소와 순수함. 그러나 조금은 그늘진 모습이, 예리하면서도 상처를 받아본 전조에게는 분명하게 보였다. 전조는, 지난해 그가 겪었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개봉부의 요청으로 스승을 대신해 소강절이 나타났다. 그를 부른 이유는 명희설이라는 남당의 유민이 빼어난 미모로 황제를 현혹하고 내기를 통해 송의 국권을 빼앗으려는 음모가 있었기 때문. 그 과정에서 빼앗긴 옥새를 되찾아오기 위해 전조 자신도 독사가 우글대는 상자에 손을 넣는 모험을 해야했다. 소강절은 맡겨진 일들은 무리없이 해냈지만, 어느순간부터 증도장의 딸인 증완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첨은 전조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었고, 결국 소강절은 자신의 도력을 높이는 수련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완첨에게 호위를 맡겼다. 전조로서는 값없이 목숨을 버릴지 모르는 이런 도박에 몸을 내맡기는 소강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강절은 죽지 않았지만, 그를 대신해서 완첨이 목숨을 잃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 모든 깨달음은 전부 완첨이 희생한 탓이었습니다. 저는 스승님께 돌아가는동안, 그리고 돌아가서 수련하는 중에도 이 일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은 더없이 가벼워보였다.
"스승님께도 그게 그대로 비쳤나봅니다. 제가 한심해보였는지, 안쓰러워 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에 나가 더 많은 것을 보고 행복을 깨닫거든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이제 개봉부의 분들과 함께 며칠 지내다 돌아갈 생각입니다."
행복. 그게 무엇일런지. 나는 그게 뭔지 알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행복을 깨달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돌아가보려 합니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명예나 권세, 재산보다 저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마음, 자연과 순리,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질 때, 저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강절의 말을 듣고 잠시 곱씹던 전조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군요. 참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소강절에게는 전조의 마음이 비치고 있었다. 전조는 자기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는걸까?
"전대협은 어떠십니까?"
"네?"
"이러한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저는…"
전조가 생각을 정리하느라 망설이자 소강절은 답해줄 사람을 아예 바꿔버렸다.
"음, 잘 모르시겠다면 저기 백대협이 가져오신 죽엽청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무슨 뜬금없는 소리요?"
한층 날카로워진 백옥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음식을 몇 겹 쌓은 음식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백대협이 보기에 전대협은 어떻습니까? 전대협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보십니까?"
"하하하하."
전조는 물론 질문을 한 소강절마저도 조금 놀랐다. 백옥당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가 부러져라 웃었다. 음식들을 이미 상에 내려놓은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음식들이 바닥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조는 세 개의 잔에 죽엽청을 조금씩 따르고 있었다.
"그 참 듣다듣다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이봐요. 전조는 절대 행복해지지 못해요."
"백형, 너무… 악담을 하시는구려."
듣던 전조가 백옥당의 말이 조금은 신경이 쓰였는지 기어이 말을 끊고 한 마디를 토해냈다. 문제는 백옥당이 그 말을 전부 무시했다는 거지만.
"전조는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지 오래요. 대신 자신에게 떳떳하고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길을 선택했지. 게다가 관리로 있는데 행복을 찾을 여유가 있을 것 같소? 전조, 할 말 있으면 해봐. 내 말이 틀렸냐?"
조금 전과도 같이 잠시 생각하던 전조가 이번에는 하고싶은 말을 온전히 끌어냈다.
"글쎄… 백형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소. 그렇기는 해도…"
"그렇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정말 불행한 것 같소."
소강절은 아까 전조가 했던 것처럼 전조의 얼굴에 숨겨진 미소를 찾아냈다. 전조는 지금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백옥당에게는 겉으로 드러난 어두운 표정만이 보였다.
"그놈의 개봉부에 매여서 사랑하는 여자도 잃었고 죽을 고비도 넘겼고, 네게 남은건 이제 관모에 잘난 개봉부와 개봉부 식구들, 그리고 너를 인정하는 강호인들 뿐이야. 그게 네가 그리던 행복이었나? 강호인들에게 등을 돌리면서까지."
"등을 돌린 일은 없소. 관리의 일이란 백형이 생각하는만큼 한심한 일이 아니며, 나는 뜻있는 협객지사들을 존중하고 있소. 다만, 그들이 내가 선택한 길에 반감을 품어 나를 배척하겠다면 유감스럽기는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전조는, 죽엽청을 홀로 들이키며 쓰게 웃었다.
"백형이 보기엔 내가 그리도 불쌍한 사람이었나보오. 하지만 난 내 삶에 만족하고, 그걸로 충분하오. 소선생께서는 저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네? 저 말입니까?"
야채볶음이며 화권을 두 손으로 열심히 집어먹던 그는 전조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전조의 대화상대가 바뀌자 백옥당은 자신도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대협 스스로가 전대협을 어떻게 보는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음, 굳이 제 기준에 맞추기를 원하신다면 한 번 해보십시오. 전대협에게는 명예, 권세, 재산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전대협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물론 저다운 모습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남을 시샘하거나 우월감에 빠진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연과 순리, 운명을 거스르셨습니까?"
"……거스른지 오래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용궁에 전해내려오는 구슬도 먹었고, 인간이 가서는 안될 곳에도 가봤습니다."
"그렇다면, 전대협은 행복하지 않으시겠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전대협은 충분히 행복하십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전대협은 이유없이 용궁의 구슬을 탐내고 금단의 장소에 함부로 가실 분이 아니니까요."
"아…"
가만히 듣고 있던 백옥당이 말했다.
"선생이 말씀하신 것들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전조에게 필요한건 그런 것이 아니오.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때, 자기자신에게 떳떳할 때, 그리고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 전조는 행복할거요."
"음… 전대협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전조는 잠시 고심하는듯 하더니 이내 답을 내렸다.
"두 분 말씀 중 한 가지를 골라 취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제게는 두 분 말씀이 모두 맞는 것 같군요.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기때문에 저다운 모습을 잃고싶지 않고, 또 그것은 저 자신에게 떳떳하다는 것과도 상통합니다. 자연과 순리, 운명을 거스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하다보니 마음이 아팠고,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키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전조는 죽엽청 한 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그저 살아가고 있나봅니다."
맑은 미소를 띠며 한쪽 팔꿈치를 손으로 받쳐든 채 소강절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 행복하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백옥당과 소강절 두 사람도 술잔을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