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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roject/包靑天

<우화별-9> 사건기록부

遇和別 9.

경력 4년 9월 초하루
여승의 아내 손씨가 개봉부에 소장제출
여승의 갑작스런 사망을 이상히 여김
검시관을 대동하여 포대인, 공손책, 왕조, 마한과 함께 현장검증
사건당시 집에는 여승과 그의 아내 손씨, 과거를 준비하는 서생 양아들 이평과 하인들이 있었음
검시결과 여승의 몸에 다른 외상이나 독의 흔적은 없음
침입흔적이나 원한관계는 없는 것으로 확인

경력 4년 9월 초이틀
포대인은 자연사로 보고 사건을 종결지으려 함
공손책은 독단적으로 혼자 여승의 집에 찾아가 그의 병력을 조사
손씨로부터 그가 간실증으로 오랫동안 심한 고생을 했다는 말을 듣게 됨
주방의 하인 윤무로부터 이평이 여승에게 주기 위해 준 약에 간실증에 치명적인 연모가 섞여있었다는 말을 듣게 됨
이상의 내용을 포대인에게 보고
포대인은 장룡, 조호를 시켜 이평을 데려와 범죄사실을 물어봄
이평은 순순히 범죄사실을 자백, 투옥

경력 4년 9월 초사흘
여승 사건에 대해 개정
심리에서도 이평은 순순히 죄를 자백
서명을 받고 개작두로 처형

경력 4년 9월 초나흘
여승사건 관련 서류정리 완료

'조호에게 나 없는 닷새 사이에 사건 하나가 접수부터 판결까지 나 최단기간의 수사일거라고 자랑아닌 자랑을 들은 기억이 나는군.'

기록부를 보면서 전조는 미소를 띠었다. 위법한 일도 아니고 사건수사를 위해 사건현장에 다시 간 일에 단지 포대인의 허락이 없었다는 것을 이유로 독단적이라는 표현을 사건기록부에 거침없이 올린 공손책이 떠올라서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기본적인 사실만 서술한 간단한 글인데도 전조에게는 공손책의 생각이 그대로 보였다.

'나흘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건을 종결지은 시간은 불과 사흘. 그리 복잡한 일도 아닌듯한데, 왜 내게 살펴보라고 하신거지?'

전조는 서첩을 덮어 탁자의 한 쪽에 두었다. 그리고 잠을 청하기 위해 관복과 관모를 벗어 탁자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별다른건 없는 것 같지만 꼭 뭔가 말씀을 드려야 하는거라면…'

침상에 누운 채 전조는 생각에 잠겼다.


"개봉부에 왔을때 악사로 있었나보오?"

새로운 날이 밝았다. 객잔에 머물며 조금은 심심했던 소강절은 객잔 주인이 금을 가진 것을 보고 빌려다 객잔의 입구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가볍게 연주했다. 느지막히 일어나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그 모습을 본 백옥당은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건 아닙니다만."

소강절이 살풋 웃었다. 금의 소리는 맑고 따뜻했다. 공기를 감싸안은듯, 부드럽게 감아 흔드는듯 차분했다.

"음률에 정통하신 것 같은데, 악사가 아니란 말이오?"
"아닙니다. 남의 집 앞에서 금을 연주하다가 물벼락을 맞기도 했는데, 무슨 악사란 말입니까?"

왠지 쌤통이다 싶은 백옥당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참 잘했다고.

"악사도 아니라하고, 보아하니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정체가 뭐요? 고양이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로는 당신은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오."
"백대협과 만난지도 열흘 정도 되었군요."

금이 긴 울림을 끝으로 노래 하나가 멈췄다.

"백대협은 전대인과 친하시지요. 모르긴 해도 무공수준도 전대인께 필적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친하지 않다면 전대인께서 백대협의 행동을 참아넘길리 없고, 무공이 전대인께 필적하지 못한다면 백대협께서 전대인을 그렇게 편히 대하실 수 없을테니까요. 맞습니까?"

백옥당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답했다. 속으로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싶었지만.

"맞소. 정말 무섭게 영리하군요. 하지만 그럴수록 당신이 누군지 더 궁금해집니다."
"제 스승님의 덕으로 개봉부에서 잠깐 일을 도왔을 뿐입니다. 그 때 개봉부 분들과 인연이 닿았던거고, 전대인이 저를 대하는 건 제가 대단한 사람이어서라기보다 전대인의 성정 때문이지요."
"전조를 너무 좋게 보고 있군요."

전조는 좋은 사람이다. 백옥당이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일부러라도 반박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 혹은 심술이었다. 청운객잔에 사람이 드나드는 모습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이번엔 밝은 소리가 백옥당의 귓가에 흘렀다.

"그럼 금은 어디서 배웠소?"
"스승님께 조금 배운 겁니다. 지난해에 금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요. 그 사람은 절 싫어했지만."

연주가 잠깐 멈추는듯 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소강절은 손을 금 위에 그대로 둔 채 살짝 미소를 띠더니 곧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그래도 금은 어떤 것이든 제 친구가 되어주고 있고, 그걸로 충분합니다."

소강절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삐딱하게 보고있던 백옥당마저도 그의 눈이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금의 소리가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차츰 많이 흔드는 것 같았다.

"그거 나도 좀 해보면 안되겠소?"
"금을 다룰 줄 아십니까?"

소강절이 아주 조금 커진 눈으로 백옥당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렇지는 않았을 거라는 듯.

"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그냥…"
"이쪽으로 앉아서 해 보시지요."

소강절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자리에 백옥당을 앉혔다. 백옥당은 잠깐 멀뚱히 앉아있다가 줄을 큰 손바닥으로 쓰다듬듯이 금의 여러 줄을 한번에 떨어대기 시작했다. 줄을 제대로 뜯는 게 아니어서 소리는 작았지만 음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좋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니, 실은 소강절조차도 금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소강절은 백옥당의 어이없는 행동에 선 채로 굳어 있었는데, 그 상황은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거기, 지금 뭐하는거요? 곡을 뜯으려면 제대로 하던가."

그랬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객잔 내의 방이 아니라,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객잔 입구였다. 아름다운 음악도 듣는 사람이 싫으면 소음이 되는 법인데 하물며 누가 들어도 소음이라고 할 소리를 내고 있으니 핀잔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 죄송합니다."

소강절은 그의 말을 얼른 이해하고 백옥당을 대신해서 사과했다. 하지만 문제는 백옥당이 그렇게 쉽게 기가 죽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덧붙여서 소강절의 행동에는 무조건 반대로 움직이고 싶다는 심리도 어느정도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하다는 거요? 돈받고 연주하는 자리도 아니잖소? 이 천하제일 풍류남아의 연주를 들으면 마땅히 감사하는 태도를…"

백옥당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버려뒀다간 당장 싸울 기세다. 소강절은 백옥당이 금에서 손을 뗀 틈을 타 오른손으로 금을 들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면서 왼손으로는 백옥당의 팔목을 잡아 끌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백대협, 오늘은 제가 한 잔 사지요."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백옥당도 공연히 일을 벌이면 골치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소강절이 시키는대로 자리를 피했다.


"전호위."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일어나서 의관을 갖추자마자 왔는데도 포증은 이미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전조가 늦잠을 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포증이 맡긴 일 때문에 아침일찍 포증을 만날 일이 있으면 아무리 서둘러도 미리 깨어있는 포증이 전조는 늘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포증이 특별히 일찍 자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포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어쩐 일인가?"

전조가 왼손에 들었던 사건기록부를 포증의 책상 한 귀퉁이에 내려놓았다.

"대인께서 주신 기록부를 다 읽었습니다. 헌데…"
"이상한 점이 있었나?"
"중요하지 않아 누락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이평이 어떻게 연모가 여승에게 극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흥미로웠습니다."
"무슨 뜻인가?"
"연모는 특수한 약재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몸의 기운을 보해주는 약으로 자주 사용되는 약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강호를 떠돌다보면 알게 모르게 전해듣는 것이 있는데, 간실증을 앓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위험할 수 있다는 건 여기서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평이 정말 의사도, 강호인도 아닌 서생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런 사실까지 알았다는 게 석연치 않습니다."

포증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편의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이 상당히 무거워 불과 몇 발자국밖에 안되는 거리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걷는 것 같았다. 적어도 전조가 보기엔 그랬다.

"자네 말은 내 사건처리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군."

전조가 너무 당황해 눈이 커졌다. 전조는 그저 묻는 말에 답을 했을 뿐이었다. 단지 대답을 했다는 점 때문에 이런 황망한 말을 듣게 될 줄 알았으면 어제 침상에 누웠을 때 괜히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잠을 청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사건 당시에 개봉부에 있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니, 놀랄 것 없네. 자네를 원망해서 하는 말이 아니니까."

포증의 시선은 전조가 아닌, 창 밖을 향해 있었다. 고요하게 아침바람을 맞는 포증과 달리 전조는 뭔가 미묘하게 달라진 개봉부의 분위기가 편치 못하다고 느꼈다.

"전호위. 아직 식전이 아닌가? 식사라도 간단히 하고 오게."

이상한 분위기가 계속 감도는 자리에서 대화를 끊고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개봉부의 방식이 아니었다. 전조는 이 점을 잘 알았지만, 이상한 상황을 애써 풀어나가기보다는 포증이 원하는대로 해주는 편이 나을 듯해서 더 묻지 않았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서재를 나서는 전조는 포증을 다시 보면 마음이 아파질까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